'이율배반' 日 수출통제, WTO·바세나르 국제규범에 모두 위배

입력 2019-07-04 18:14  

'이율배반' 日 수출통제, WTO·바세나르 국제규범에 모두 위배
일본 과거엔 中 향해 "글로벌 공급체계를 흔들어 세계경제 위협" 주장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일본의 이번 수출통제 조치는 국제 무역규범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서 금지하는 조치뿐 아니라 일본이 스스로 합의한 자유무역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명분으로 내세운 바세나르 체제와 관련해서도 기본 지침을 위반한 것은 오히려 일본이라고 우리 정부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일본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를 대상으로 수출통제 방침을 밝히자 우리 정부는 WTO 제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
WTO가 이런 사안과 관련해 규범으로 삼고 있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1조는 원칙적으로 상품 수출에서 금지나 제한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대신 수출허가제도를 둬서 예외 상황에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이 내건 '신뢰관계 훼손'과 같은 불명확한 이유는 WTO 협정에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또 이번 조치가 일본이 최근 의장국으로서 개최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선언문의 합의정신과도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일본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인 무역환경을 구축한다"는 내용을 담은 오사카 선언을 채택하고는 돌아서서 정반대 행동을 한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오자 아베 총리는 3일 WTO 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바세나르 체제를 언급했다.
아베 총리는 "안보를 위한 무역관리를 각국이 한다는 것은 의무"라며 "그 의무 속에서 상대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우대조치는 취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세나르체제는 다자간 전략물자 수출통제 시스템의 근간이다. 수출 물자가 무기로 쓰인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을 경우 수출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다만 모든 회원국이 특정 국가나 특정 국가군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선량한 의도의 민간거래'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기본 지침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한국 만을 특정해서 선량한 의도의 양국 민간기업간 거래를 제한하는 것은 바세나르체제 기본 지침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일본이 '신뢰훼손'이라는 자의적 주장을 하면서 수출제한 강화조치를 발동한 것은 바세나르체제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략물자 수출통제 제도는 국제평화와 안전유지라는 취지에 맞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하게 운영하도록 돼 있다. 가령 북한이나 이란과 같이 유엔 차원의 제재 결의를 받는다거나, 바세나르 회원국들의 논의와 같은 절차가 사전에 있어야 한다.

한국은 생화학무기, 바세나르체제, 원자력기술, 미사일기술 등 전략물자 4대 수출통제체제와 3대 조약에 모두 가입한 30개국에 포함되며, 다른 회원국으로부터 전략물자 관리와 관련한 지적을 받은 적도 없다.
오히려 정부는 일본의 조치가 당사국간 협력에 기반한 집단안보 전략물자 수출통제체제를 흔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부는 일본의 수출통제 조치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관련한 대법원 배상 판결을 이유로 한 경제보복 조치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CBS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일본의 수출 규제가 "명백한 경제보복"이라고 비판하고, 일본이 규제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상응한 조치를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또 일본의 조치가 세계 무역질서와 제3국 기업에도 심각한 피해를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유명희 통상본부장은 4일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일본 수출통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일본 조치가 양국 경제관계를 훼손하고 글로벌 공급체계를 흔들어 세계 경제에 큰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본이 2010년 9월 중국과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영유권 분쟁 당시 내세운 명분이기도 하다.
일본은 당시 희토류 수출 제한을 가한 중국에 "국제적 공급망을 흔들고 세계 경제 안정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미국, 유럽연합(EU)과 함께 WTO에 공동 제소해 2014년 승소 판정을 받았다. 중국은 결국 규제 조치를 풀어야 했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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