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터 뮤지컬·연극까지 주거빈곤 다룬 작품 '봇물'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한국에서 집은 비싸다. 꼬박 저축해 평균 43세가 돼야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한다. 말이 내 집이지 집값의 38%는 대출이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2018 주거실태조사 최종 연구보고서'가 드러낸 씁쓸한 단면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예술가는 더 이상 집을 따뜻한 쉼터로 묘사하지 않는다. 올해만 해도 영화 '기생충'이나 창작가무극(뮤지컬) '신과함께_인과 연', 창작오페라 '텃밭킬러' 등 복수의 작품이 동시다발로 주거를 둘러싼 갈등을 그렸다.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봐도 마음은 불편하다. 이 순간 우리 곁에서 진짜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 지옥고·재개발·철거민…'픽션'이 아니다
영화 '기생충'은 햇볕 잘 드는 박 사장네 저택과 취객이 싼 오줌이 흘러드는 기택네 반지하를 극명하게 대비한다. 누군가에겐 미세먼지를 씻어준 단비가 누군가에겐 물난리의 원흉이다.
서울시오페라단 창작오페라 '텃밭킬러'는 영화 '기생충'을 오페라 무대로 옮긴 듯한 작품이다. 배경은 옥상 구둣방. 한뼘 남짓한 공간에 삼대가 함께 산다. 발 뻗고 누워본 적 없는 할머니는 손자들에게 차라리 가출해달라고 애걸한다.
두 작품을 소개한 기사 댓글에 "진짜 이런 집이 있다고?"라는 질문들이 있는데, 답은 '있다'다. 국토부가 발표한 '2018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택 이외 거처에 사는 가구 비율은 4.4%에 달한다.
뮤지컬 '신과 함께_인과 연'은 재개발로 밀려난 철거민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원작 웹툰의 주호민 작가는 2009년 용산참사를 보고 작품을 썼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철거민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아현2 재건축구역에선 철거민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약자끼리 싸운다
빈곤은 약자간 경쟁으로 이어진다. '기생충' 첫 장면에서 기택네는 피자 점주에게 기존 아르바이트생을 쫓아내고 우리 가족을 채용해 달라고 조른다. 이 시도가 좌절된 이후 우연히 흘러 들어간 박 사장네에선 기어코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텃밭킬러'에서 가족은 전 재산인 90대 할머니의 금니 3개를 서로 차지하려고 악다구니를 쓴다. 아들은 서슴없이 망치를 휘두르며 그만하면 오래 살지 않았냐고 위협하고, 손자들은 저마다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금니를 뺄 것을 종용한다.
'신과 함께_인과 연'에서 재개발을 결정한 권력자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약자끼리 서로 물어뜯는다. 재개발 보상금을 놓고 주민끼리 싸우고, 생계 때문에 철거용역 회사에 취직한 청년들이 철거민들과 대치하다 범법자가 된다.
◇ 예술가들이 상상하는 집의 미래는
'신과 함께_인과 연'의 김태형(41) 연출은 이런 작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진 건 그만큼 집을 둘러싼 사회적 고민이 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집은 사람이 머물고 살아야 할 공간인데 어쩌다 투기의 대상이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요즘 수납·정리 컨설팅, 인테리어 등이 인기잖아요. 집을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꾸미려는 노력이죠. 그런데 이와 반대로 누군가에겐 한 몸 뉠 공간조차 없어요. 그걸 획득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죠. 그런 양극화한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예술가들은 이제 주거의 다른 방식을 상상한다. 아파트를 주제로 한 올해 두산인문극장 마지막 작품 '포스트 아파트'가 그 예다.
'포스트 아파트' 제작에 참여한 건축가 정이삭(39)은 아파트 다음이 무엇이 될지 단언할 순 없지만, 집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신도시가 생긴 지 30년 정도 지났습니다. 부수고 새로 짓고 싶은 자와 부수지 않으려는 자, 그걸 바라보는 제삼자의 갈등이 팽팽하죠. 그 가운데서 질문이 나옵니다. 아파트가 도대체 뭔데? 계속 용적률을 높여서 부를 증식하는 방향으로 가면 되는 건가? 아파트 그 다음(Beyond)은 무엇이 될까? 이런 다양한 질문들이 우리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도록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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