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해병대 동원해 원유 운송 중이던 이란 유조선 억류
이란 "해적 행위" 강력 반발…美 볼턴 "훌륭한 뉴스" 환영
중동 군사적 긴장 고조될 듯…美 호르무즈 연합호송 희망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영국령 지브롤터가 이란산 원유를 싣고 시리아로 향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조선을 억류함에 따라 이란과 서방 사이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은 주(駐)이란 영국 대사를 조치해 "불법적이고 수용할 수 없는 (자국 선박에 대한) 억류에 매우 강하게 반대한다"고 항의했다.
반면,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트위터를 통해 이란 유조선 억류에 대해 "훌륭한 뉴스"라고 환영했다. 또 그는 "미국과 동맹국은 이란과 시리아가 이러한 불법적 거래로 이익을 취하는 것을 계속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유조선 억류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국이 대(對)시리아 제재를 명분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이란제재에 사실상 동참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지브롤터 경찰과 세관당국은 영국 해병대의 도움을 받아 4일 오전 지중해의 관문인 지브롤터 남쪽 4㎞ 해상에서 전장 330m 크기의 초대형 유조선 '그레이스1'을 억류했다.
BBC에 따르면 이란 유조선 억류를 위해 영국 해병대 30명이 지브롤터 당국의 요청으로 파견됐다.
일부 해병대원은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유조선에 승선했고, 나머지 해병대원은 고속정을 타고 접근했다. 억류 작전은 실사격 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이뤄졌다고 BBC는 전했다.
지브롤터 당국은 유럽연합(EU)의 시리아제재를 어기고 원유를 시리아의 바니아스 정유공장으로 운송하던 그레이스1을 억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 유조선에 실린 원유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는 당시 공개하지 않았다.
억류 당시 이 유조선에는 파나마 국기가 걸려 있었고, 로이터가 입수한 선적 자료에는 이라크산 원유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란이 해당 유조선의 억류에 강력히 항의함으로써 유조선에 실린 원유가 이란산임을 사실상 확인했다.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일종의 해적 행위"라며 반발했다.
로이터는 해양 전문가 및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30만t급인 그레이스1은 4월 중순 이란 카그 섬의 항구에서 이란산 원유를 가득 실었고, 아프리카를 돌아 시리아로 가기 위해 지중해로 진입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이 유조선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단거리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않고 먼 길을 돌아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억류 당시 유조선의 국적도 파나마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파마나 해양 당국은 억류된 유조선 그레이스1이 5월 29일 현재 파마나 국제선박 명부에 더는 등록돼 있지 않다고 4일 밝혔다. 그레이스1이 테러 자금 조달과 관련돼 있다는 경고를 받고 등록을 폐지했다고 파나마 당국은 설명했다.
이란이 미국의 대(對)이란제재에 대응해 핵 합의에 명시된 우라늄 농축 상한(3.67%)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이번 유조선 억류는 페르시아만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
2015년에 체결된 이란 핵 합의에 참여했던 유럽국가들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 합의 탈퇴에 반대했고, 미국의 이란제재에 본격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핵 합의 당사국 중 하나인 영국이 이란 유조선을 억류함에 따라 유럽국가의 중재를 기대했던 이란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와 관련, 트럼프 행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에 대한 이란의 공격 증가를 우려해 국제적 지원을 받아 선박을 호송하는 계획을 진전시키고 있다고 dpa 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6월에 유조선 6척이 공격을 받은 이후 해상 시추 원유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운송 안전확보를 위해 연합호송을 희망하고 있다고 백악관과 미 국방부 관리를 인용해 이 통신은 전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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