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미설치·잔해물 적체 반복…지자체 사후 관리 허점
현행법상 신고만 하면 철거 가능…안전조치 의무화해야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지난 4일 발생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 붕괴 사고로 철거 안전 관리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사고 원인으로 지지대 설치 등 안전조치 미비가 지목되지만 관할 구청은 사전 심의가 끝난 뒤 사후 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여기에는 업체의 자체 안전 관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리·감독 시스템의 한계가 한몫했다.
7일 서울시와 서초구에 따르면 잠원동 건물 붕괴 사고는 철거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인재'로 추정된다.
철거 업체는 철거 전에 반드시 설치해야 할 지지대(잭 서포트)를 설치하지 않았고, 철거 도중에 나온 콘크리트 잔해도 치우지 않고 쌓아뒀다. 잔해물이 쌓이면 하중이 더해져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커진다.
또한 건물이 도로변에 있음에도 얇은 가림막만 설치해 피해를 더욱 키웠다. 철거 감리가 있었지만 상주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항은 모두 사전 심의 때 지적받은 내용이었다.
서초구는 지난달 3일 1차 심의에서 ▲ 공사장 상부의 과하중을 고려한 동바리(지지대) 설치 ▲ 철거 잔재 당일 방출 ▲ 철거 감리 상주 등 16가지 보완 사항을 주문했다.
해당 업체는 각 층에 잭서포트 10개씩을 설치하는 등 보완 계획을 제출했지만, 실제로는 이를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잠원동 건물처럼 도로변에 인접한 소규모 건물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철거해야 안전하지만 지하 1층 공사 중 상층부가 무너진 점으로 미뤄 상층부 철거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층부를 철거한 것으로 조사 당국은 보고 있다.
그러나 서초구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보완 사항을 이행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현장 점검은 한 차례도 없었다.
서초구 관계자는 "잠원동 건물처럼 소규모 공사장의 현장 안전 관리는 기본적으로 감리가 담당하게 돼 있다"며 "현행법상 자치구가 계획대로 이행하라고 강제할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잠원동 사고는 2017년 발생한 낙원동과 역삼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와 닮은꼴이다. 두 사고 모두 지지대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고, 잔해물을 건물 안에 쌓아둬 사고를 자초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는 원인으로는 업계의 '안전불감증'과 허술한 관리·감독 제도가 꼽힌다.
철거업은 특히 안전 사고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철거(해체) 공사업 등록기준이 취약하다 보니 영세한 비전문 업체들이 많고, 지방자치단체의 직접적인 관리·감독에서 벗어나 있어 주먹구구식으로 철거가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올해 서초구 굴토(철거)전문위원회의 철거 심의 건수 22건의 평균 지적(보완) 사항은 10개에 달했다. 강남구와 영등포구 등 재개발과 재건축이 많은 다른 자치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시가 2017년 2월 건축조례를 개정해 사전 심의제와 상주 감리제를 도입했지만, 실질적인 관리·감독 권한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치구는 심의 결과를 토대로 해당 건축주에 철거 신고 시 심의 의견 반영 여부를 제시하라고 할 뿐 철거를 막을 법적 권한은 없다. 서초구도 결국 재심 끝에 잠원동 건물의 철거를 조건부 의결했다.
현행 건축법상 철거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꾸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내년 5월부터나 시행된다.
서울시는 조만간 서울 전역 철거공사장을 종합 점검해 안전대책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충분한 안전조치를 의무화하는 법과 제도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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