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엑스칼리버' 리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서구 판타지 서사의 근간을 한국에서 뮤지컬로 재해석할 때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강렬하게 이국적이거나 아예 현지화하거나, 선택은 두 가지다.
지난달 1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후자에 가깝다. 출생의 비밀, 불륜과 같은 국내 TV 드라마에서 볼법한 익숙한 양념을 쳤다.
아더왕 신화는 바위에 박힌 엑스칼리버를 뽑은 청년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맞서 왕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그러나 '엑스칼리버'에서 촘촘한 개연성은 발견하기 힘들다. 주인공 아더(카이·김준수·도겸)보다 조연 모르가나(신영숙·장은아) 쪽에 무게가 실린다. 아더가 왜 왕이 되어야 하는지, 설익은 판단력과 성격적 결함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배다른 누이 모르가나가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동생 아더에게 얼마나 억울하게 후계자 자리를 뺏겼는지, 왕비 귀네비어(김소향·민경아)와 기사 랜슬롯(엄기준·이지훈·박강현)이 어쩌다 불륜에 빠졌는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적에 맞서는 찬란한 영웅 서사라는 중심 이야기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뤄진 탓에 주인공이 누구인지 혼란을 준다.
넘버(곡)들 역시 모르가나에게 집중한다. '레베카', '명성황후' 등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입증한 신영숙의 시원시원한 창법은 객석을 뒤집어놓으며 쾌감을 안긴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나머지 등장인물의 곡들도 아름다운 켈틱(Celtic) 사운드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느낌을 물씬 내지만, 모르가나에 견줘 무게감은 떨어진다.
다만 시각적 포만감은 상당하다. 이야기 주요 요소인 주술과 마법이 판타지적 연출과 만나 감탄을 자아낸다. 블록버스터급 뮤지컬이라는 홍보 문구가 어색하지 않게 무대 위에 실제 비를 내리는 대규모 빗속 전투장면, 70여명의 앙상블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는 아더왕과 색슨족의 전투장면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공연은 8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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