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병 서울대 교수, 학술지 '한국문화'서 주장
"연행은 여행 개념 내포…사적 글쓰기에나 적합한 말"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이 중국에 파견한 사신을 지칭하는 말로 흔히 사용되는 '연행사'(燕行使)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 '족보' 없는 용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희병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박희수 씨와 함께 쓴 논문 '조선시대 중국 파견 사신의 총칭 문제'에서 "2008년 이후 사용 빈도가 엄청나게 늘어난 연행사는 학술용어로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한국문화' 최신호에 게재한 이 논문에서 명(1368∼1644)과 청(1636∼1912) 시기로 나눠 조선이 보낸 공식 사신의 명칭을 고찰했다.
그는 우선 연행사라는 용어가 등장한 배경을 살폈다. 박 교수는 김태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1970년대에 연행사라고 썼고, 이어 일본 학자 후마 스스무(夫馬進) 교토대 명예교수가 2008년 한국에서 '연행사와 통신사'를 출간한 뒤 연행사라는 단어가 널리 퍼졌다고 강조했다.
후마 교수는 당시 조선에서 중국에 간 사람들이 남긴 여행기를 '연행록'(燕行錄)이라 했고, 시대에 상관없이 중국행 사신을 통칭하는 적절한 말이 없다는 점에서 '연행사'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조선 지배층의 대명관과 대청관은 근본적으로 달랐다"며 "연행록은 어디까지나 사적 기록이며, 당대에 사용된 호칭을 무시하고 임의로 새로운 학술용어를 사용해서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연행사는 아예 없는 용어는 아니지만,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조선 후기에 한두 차례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박 교수는 "연행사는 공식적 사료를 볼 때 대청사행의 총칭이 되기에는 용례가 매우 부족하고 사용된 맥락도 일회적"이라며 "이러한 연행사를 대청사행과 대명사행을 아우르는, 조선시대 중국 파견 사신의 총칭으로 사용하자는 견해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중국에 간 사신을 어떻게 불렀을까.
박 교수는 15세기에서 17세기 전반까지 대명사행을 지칭한 일반적 호칭은 '부경사'(赴京使)였고, 17세기에 들어 '조천사'(朝天使)라는 말을 일부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에서 왕조가 교체된 뒤에는 조선이 사신 명칭을 확정하지 못했다면서 "부경사는 천자가 있는 세계의 중심인 경사(京師)에 나아가는 사신을 뜻했는데, 이러한 모화적(慕華的) 함의를 담은 용어를 오랑캐가 세운 청에 쓰는 일을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 교수는 "정조 대 이전까지 실록에는 대청사행에 대한 총칭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며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숙종 대까지는 중국 사신 호칭이 '부경사'였으나, 숙종 대에 '부연사'(赴燕使)로 대체하는 경향이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조 14년(1790) 10월 14일 실록을 보면 통신사(通信使)와 부연사가 나란히 나타난다"며 "정조 시기에는 부연사가 대청사행 총칭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교수는 부연(赴燕)이라는 단어에서 '부'(赴)가 '나아가다' 혹은 '이르다'를 뜻하고, 임지로 가는 것을 '임행'(任行)이 아닌 '부임'(赴任)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제시한 뒤 "여행 개념이 내포된 연행보다 부연이 공적 지향이 강하고 딱딱한 뉘앙스의 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입당사'(入唐使)나 '입송사'(入宋使)라는 말을 썼다"며 "역사적 전통을 고려하는 위에서 중국 사신에 대한 새로운 용어를 만든다면 명에 파견된 사신은 입명사(入明使), 청에 파견된 사신은 입청사(入淸使)가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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