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세상] 유튜브 '먹방' 성지로 탈바꿈한 모란시장

입력 2019-07-12 06:00   수정 2019-07-12 09:05

[SNS 세상] 유튜브 '먹방' 성지로 탈바꿈한 모란시장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예전에야 개고기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을 불러모을 다른 장점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을지로나 동묘 구제시장이 뜬 것처럼 최근 '뉴트로(복고풍의 재해석을 뜻하는 신조어)'가 유행이기도 하잖아요."
경기도 판교의 한 IT 기업에서 근무하는 주모(31)씨는 퇴근 후 종종 성남 모란시장을 찾는다. 오일장 날이면 장터 식당도 서고 길거리 음식이 풍부해 대형 마트에서는 얻기 힘든 식도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씨는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처럼 향수를 자극하는 물건도 판다"며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모란시장에서 먹거나 산 것을 찍어 올리면 주변 반응도 나쁘지 않다"고 전했다.
한때 국내 최대 개고기 시장으로 철창 안에 갇힌 개나 도살장의 모습으로만 그려지던 모란시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2017년부터 시작된 '개 시장' 자진 정비 사업이 이뤄진 결과다. 도축장 등 혐오 시설을 식당가 등이 대신한 데다 복고 열풍이 맞물려 젊은 층이 찾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모란시장은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로도 부상하고 있다.



수박화채, 핫도그, 해물파전, 닭꼬치, 열무국수, 돼지껍질 볶음, 칼국수… 지난달 '먹방' 유튜버로 알려진 '허미노'(본명 허민오) 크리에이터가 오일장이 선 모란시장에서 먹은 음식이다. 그는 "8천원만 내면 오리고기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가격도 저렴하다"며 "현대식으로 바뀐 전통시장이 많은데 이곳은 아직 옛 모습도 남아있다"고 평했다. 해당 영상은 11일 기준으로 5만회에 달하는 조회 수를 올렸다.
구독자 18만명을 보유한 다른 유튜버 역시 비슷한 시기 모란시장 오일장을 찾은 영상에서 "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기만의 감성이 있다"고 전했다. 구독자들도 "옛날에 부모님과 함께 장 보던 추억이 있던 곳인데 반갑다", "사람 냄새 나는 재래시장에 가면 언제나 설렌다", "모란시장 직접 가보면 크기에 놀라고 다양함에 또 놀란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모란시장'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최근 한 달 사이에만 200개 넘게 올라왔다. 일부 개고기 반대를 주장하는 글도 보였지만 젊은 층이 올린 모란시장 방문 인증샷이 더 많았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자, 초복(初伏)을 사흘 앞둔 지난 9일 찾은 모란시장에서는 이런 변화를 실제로 엿볼 수 있었다. 모란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우측으로 100m 정도를 가득 채웠던 개 도축장은 자취를 싹 감췄다. 5년 넘게 시장 주차 관리 요원으로 일한 A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 도축장 주변에 매일 같이 동물 보호 단체가 찾아와서 시위를 벌이는 통에 늘 시끌벅적했다"며 "올해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일장에서 호두과자와 땅콩과자 등을 만들어 파는 한 상인은 "예전엔 뱀이나 개구리 같은 건강식품을 파는 좌판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달콤한 군것질거리를 파는 매대가 는 것 같다"며 "손님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 장사하는 사람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달 초 모란 오일장에 다녀왔다는 이모(37·경기도 남양주시)씨는 "부모님이랑 5살짜리 아들 모두 만족시킬 만한 장소는 여기가 딱 맞다"고 말했고, 배모(36)씨는 "꽃무늬 원피스나 큼직한 머리핀 등 복고적인 패션을 좋아하는데 이곳에 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가격도 웬만한 곳보다 싸다"고 좋아했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 교수는 "재래시장과 같은 '옛것'은 요즘 세대에게는 새로운 존재로 다가온다"며 "신선함이 결국 (젊은 층이) 지갑을 여는 이유가 된다"고 분석했다.
30년간 운영해 온 개고기 사업을 접고 지난해 8월 낙지 전문점으로 재개업한 김용복(64) 모란 전통시장 회장은 "수십년간 해온 사업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았다"면서도 "시장이 변하는데 계속 고집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성남시상권활성화재단 공설시장지원팀 관계자는 "주말 오일장에만 10만명의 인파가 몰리는데 이들의 연령대가 점점 어려진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청년 창업을 유도하는 등 젊은 손님을 끌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모란시장 관계자는 "상인들도 '모란시장=개고기'라는 과거 이미지를 벗어나 다른 색깔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며 "'잔인하다', '비위생적이다'라는 오명 대신 여기만의 특색을 갖추기 위해 고민 중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35년 동안 이곳에서 개고기를 팔아 온 김재옥(58) 사장은 "예전에는 줄 서서 (개고기를) 살 만큼 인기가 많았다. 도축장을 가게 앞에 두고 파는 게 모란시장만의 차별점이었는데 그게 없어지니 손님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면서 "10년 전만 해도 1년에 7∼8억원치는 팔았는데 요즘에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탄했다.
김 사장은 "살길은 찾아놓고 없애라고 해야지 무조건 문 닫으라고만 하니 답답하다"라며 "위생이 문제라면 도축장을 위생적으로 만들어 놓으면 될 일 아닌가. 개고기도 하나의 식품 사업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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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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