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멘토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 10∼13일 내한 독주회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56)의 이력과 평판은 화려하다.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완벽주의자로 보인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그를 "영혼의 동반자"라고 부르며 8년간 월드투어를 함께했고,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1990년 쇼팽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 같은 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선 3위를 차지했다. 현재까지 쇼팽과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동시 입상한 미국인은 케너가 유일하며, 미국인으로서 영국왕립음악원 교수에 임용된 것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독주회를 위해 내한한 그를 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났다.
집요하리만치 완벽함을 추구할 듯했던 그는 예상을 깨고 오히려 악보를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처음 악보를 받아들면 작곡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지시를 했는지 고민합니다. 동시대를 산 예술가를 분석하기도 하고, 역사적·문화적 배경도 공부하죠. 의도를 알아차리고 나면 악보를 따라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악보는 연주의 시작점을 알려줄 뿐, 종착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케너는 쇼팽과 슈만을 예로 들었다.
"쇼팽에게 피아노를 배운 학생이 이런 일기를 남겼어요. 쇼팽조차도 자신의 악보를 연주할 때 그대로 하지 않았다고요. 슈만은 악보의 어떤 장에 '가장 빠르게 연주할 것'이라고 해놓고, 그다음 장에 '더 빠르게'라고 적어두기도 했어요. 사실 이건 불가능하잖아요? 우리는 여기서 '더 빠르게'라고 말한 의도를 알아차려야 해요. 의도를 파악한 뒤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건 음악가에게 자유를 줍니다. 악보대로만 하면 공허한 연주가 될 거예요."
악기에 대해서도 관대한 해석을 내놨다. 그는 "새 악기를 만나는 건 도전이다. 다른 성격의 피아노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해석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래서 피아노를 고를 때 특별한 기준이 없다"고 했다.
조성진과 꾸준히 교류해온 그는 아끼는 제자의 장점을 끝없이 열거했다.
"2011년 조성진을 처음 만났을 때 감명받았죠. 이 학생은 내 조언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해내는구나 싶어서요. 작년 여름에 만났을 때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로 성장했더군요. 요즘도 종종 본인이 작업한 곡을 보내오곤 하는데, 제가 훌륭한 아티스트의 인생에서 작게나마 한 부분을 차지해서 감사하고 뿌듯합니다."
이번 내한 독주회의 제목은 '유머레스크'(Humoresques). 낭만주의 작가 겸 철학자인 장 폴 리히터(1847∼1937)의 '유머'를 주제로 한 에세이에서 영감을 얻었다.
케너는 "유머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방법이다. 단순히 현실의 괴로움에서 도피하거나 고통을 달래주는 아스피린 역할 이상"이라며 "유머에 대한 다채로운 접근법을 음악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 프로그램을 하이든과 슈만, 쇼팽, 파데레프스키로 구성했다. 하이든의 소나타 다장조, 슈만의 다비드동맹무곡집, 쇼팽의 5개의 마주르카, 파데레프스키 주요 작품들을 연주한다.
공연은 10일 서울 신영체임버홀, 1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12일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열린다. 12일에는 야마하홀에서 마스터클래스로 학생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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