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더 저렴한 저순도 불화수소나 다른 물질로 충분…에칭가스 그런 용도로 쓰는 경우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수출을 규제하면서 화학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국영방송인 NHK는 9일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수출규제 대상) 원재료는 화학무기인 사린 등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일부 한국 기업이 발주처인 일본 기업에 서둘러 납입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일상화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대한 수출 규제 배경으로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의 대북반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보도는 화학무기 원료가 한국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을 부추긴다.
그러나 국내 화학자들은 '에칭가스의 화학무기 전용 가능성'에 대해 "타당성이 떨어지는 억지 주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론상 에칭가스로 사린과 같은 화학무기를 만들 수는 있으나, 저순도 불화수소나 다른 물질로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값비싼 에칭가스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에칭가스는 순도 99.99% 이상의 고순도 불화수소로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정밀한 회로 홈을 파는데 데 쓰인다. 에칭가스는 제작이 까다롭고 저순도 불화수소와 비교해 가격이 매우 비싸다.
성영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사린가스를 만들 때 불화수소가 들어가는 것은 맞지만, 비싼 고순도 불화수소인 에칭가스를 쓸 이유가 전혀 없을 뿐더러 아무도 그런 용도로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순도 낮은 불화수소로 충분히 가능한데 이는 북한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며 "북한에 많은 형석이라는 암석이 있는데 거기에 황산을 부으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있는 과학자들도 다 아는 상식적인 내용인데, 정치적 이유로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도 "사린을 만드는데 고급 불화수소를 쓸 필요가 없다"며 "불소치약에도 쓰이는 불화나트륨 같은 물질을 이용하면 더 쉽게 만들 수가 있는데 무엇 하러 비싸고 다루기도 힘든 물질을 쓰겠느냐"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 사람들이 옴 진리교 때문에 사린에 나쁜 기억을 갖고 있는데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가치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전략물자 대북반출 의혹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한 그동안 국내 불화수소 수입업체 등에 대한 긴급 전수조사를 통해 대북반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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