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시가총액 4조4천억원(5월 기업공개 당시), 투자자 빌 게이츠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콩, 버섯, 호박에서 뽑아낸 식물성 단백질로 '고기 아닌 고기'를 만드는 미국 식품업체 비욘드미트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동물권 침해와 환경 오염 논란이 따라붙는 기존 육류 산업의 대안으로 서구에서는 식물로 만든 대체육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흐름의 예외는 아니다. 아직은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가 소비하는 정도지만, '윤리적 소비'를 고민하는 일반 소비자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 일반인 입맛도 사로잡는 국산 대체육 버거
지난 5일부터 사흘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비건페스타'. 지난 1월 채식주의를 표방한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을 선보인 제1회 행사에 이어 6개월 만에 두 번째로 개최된 이 박람회에서 관람객의 시선이 쏠린 곳은 바로 대체육 관련 부스였다.
소비 생활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SNS인 인스타그램에 관람객들이 올린 후기 가운데 식물성 단백질 패티를 넣어 만든 비건 버거와 비욘드미트 상품에 대한 내용이 다수 등장했다.
게시물은 평소 비거니즘(육류·어류·달걀·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을 일절 먹지 않음) 등 채식주의를 실천하던 이들이 "비건으로도 맛있을 수 있다니"(인스타그램 이용자 swio***)라고 감탄하는 등 채식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을 반기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평소 채식을 하지 않는 이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행사장을 방문한 인스타그램 이용자 mukh****는 "비건 버거는 패티에서 고기와 다른 식감이 약간 느껴지긴 했어도 전체적으로 맛있었다"고 평가했다.
SNS상 반응뿐 아니라 실제 박람회에서도 대체육 관련 부스에 인파가 몰렸다.
비건 버거를 현장 조리, 판매한 식물성 단백질 제조업체 비건 스프라우트의 부스에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에도 버거를 사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자신은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설명한 주모(43·서울 성북구)씨는 "건강한 먹을거리와 독특한 소품에 평소 관심이 많았는데 SNS에서 행사가 열린다는 것을 보고 재미 삼아 아이들과 와봤다"며 "비건 빵이나 화장품 등은 평소 백화점 같은 데서 접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식물성 고기류는 처음 봐서 버거를 사봤는데 아이들도 잘 먹었다"고 흡족해했다.
이 업체는 행사를 위해 준비한 비건 패티를 모두 소진하고 완판했다고 밝혔다.
비건 스프라우트 김창진 대표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서구에서 일반인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대체육 개발에 박차를 가하듯,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패티를 만들기 위해 마늘과 양파 맛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비욘드미트와 국내 독점 공급계약을 맺은 동원F&B가 이날 진행한 시식 행사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겉보기에는 다진 쇠고기를 뭉쳐 만든 패티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대체육 패티를 맛본 관람객들은 "신기하게 고기랑 비슷한 고소한 맛, 철분 맛이 난다", "알 수 없는 묘한 향이 나 입에 안 맞다"는 등 다양한 평을 내놨다.
동원 F&B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에 비욘드미트 패티를 2개들이 200팩 준비했는데 모두 판매됐다"며 "지난 2월 국내 출시 이후 지금까지 1만5천팩(패티 3만개)이 팔려나가 대체육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건 페스타 주최측은 이번 행사 관람객 2만4천명 가운데 250명의 설문지를 표본 추출해 채식 성향을 조사한 결과 4분의 1 정도가 채식을 하지 않지만 행사장을 방문한 것으로 분석했다.
◇ 국내 대체육의 과거와 현재
해외에서 불기 시작한 '가짜 고기' 열풍이 상륙하기 전에도 국내 대체육 시장은 나름의 맥락에 따라 발전해왔다. 많은 이들이 먹어놓고도 식물성 고기인 줄 잘 모르는 식품도 있다. 인스턴트 짜장면에 건조된 고명으로 들어있는 작은 고기가 바로 콩 단백질인 것. 농심에 따르면 짜파게티를 출시한 1984년부터 콩고기를 건더기로 넣었다.
농심 관계자는 "그동안 소비된 콩고기의 양만 따로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짜파게티 누적 판매량이 72억개인 것을 생각하면 고명도 상당한 분량이 소비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인스턴트 짜장면 속 콩고기는 채식을 위한 재료라기보다는 경제성과 보관의 용이함을 염두에 둔 대체 식품의 성격이 강했다. 채식이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핫'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기 전에도 국내 채식인들의 단백질 공급처가 돼 온 대체육은 대체 식품이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상품으로 존재했다.
20여년간 식물성 고기를 제조해온 베지푸드 이승섭 사장은 "비욘드미트가 유명해져서 직접 사다 먹어 봤는데 질감에서 국내 대체육 제조 기술이 더 뛰어난 것 같다"며 "대체육을 만드는 데 고기 맛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점은 식감을 재현하는 것인데, 국내 업계는 곤약으로 고기 마블링을 표현하는 등 노하우가 상당히 축적돼 있다"고 말했다.
콩고기, 밀고기로 만든 제품은 실제로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시판되고 있다. 스테이크, 두루치기, 진미채, 스팸(소이팜), 너비아니, 어묵, 장조림, 육포 등 웬만한 고기 음식은 콩고기, 밀고기로 제조돼 팔리고 있다.
한 업체의 식물성 단백질 돈가스와 소시지도 직접 먹어본 결과 고기로 만든 음식과 대체로 비슷한 식감을 구현해 내고 있었다. 문제는 식물성 고기 특유의 발효된 콩 풍미 등이 배어 있어 고기 맛에 익숙한 이들에겐 어쩔 수 없이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점.
한 대체육 업계 관계자는 현재를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진단하면서 "예전에는 고기를 체질적으로 먹지 못하거나 종교적 이유가 있는 이들이 채식 인구의 주를 이뤘고 연령층도 50대 이상이었지만 최근에는 동물 복지, 환경 등을 생각하는 젊은 층으로 소비자층이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욘드미트의 국내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비건 스프라우트 김 대표는 "우리 업체의 패티 도매가가 장당 1천600원으로 비욘드미트 도매가의 절반 수준으로 파악되고 콩 단백질 함유율도 높다"며 국산 대체육 업계가 미국에서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은 비욘드미트에 견줘도 경쟁력을 갖췄음을 자신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의 2∼3%인 100만∼150만명이 채식 인구로 추정됐다. 10여년 전인 2008년 15만명보다 10배 증가한 규모다. 젊은 층에 부는 비거니즘의 유행 등으로 앞으로 더 가파른 상승세가 예상된다. CJ제일제당, 풀무원, 롯데푸드, 샘표 등 국내 식품 관련 기업들도 채식의 유행과 대체육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관련 제품 개발에 매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cs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