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지대에 케이블카가 생긴다면…콜롬비아에서 본 도시재생

입력 2019-07-15 08:00  

서울 고지대에 케이블카가 생긴다면…콜롬비아에서 본 도시재생
메데인 고산지 빈민가 케이블카로 연결…"더 멀리 일하러 가게 됐어요"



(메데인<콜롬비아>=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한국에선 관광용 정도로 여겨지는 케이블카를 접근이 어려운 고지대를 위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만들면 어떨까.
서울에서는 아직 상상에 지나지 않은 일이 콜롬비아 제2 도시 메데인 빈민가에서는 이미 현실화해 도시재생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찾은 메데인 산토도밍고 지역의 아세베도 역은 지상철(메트로)과 대중교통 케이블카 '메트로카블레'의 환승역이었다.
카블레는 영어의 케이블(cable)과 철자, 의미가 같은 스페인어다.
메데인에는 메트로카블레 4개 노선이 있다. 산토도밍고의 메트로카블레는 가장 이른 2004년 만들어져 93개 케이블카가 4개 역을 돌며 시간당 3천명을 실어나른다.
산토도밍고는 중남미를 순방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날 도시재생의 사례를 찾고자 방문한 메데인 '모라비아 문화발전센터'와 매우 가까이 있다.
산토도밍고와 모라비아는 나란히 한때 악명 높은 우범지대 빈민가였다가 '외부인이 방문할 수 있는' 평범한 곳으로 차차 변해가는 지역들이다.



산토도밍고의 변신은 케이블카가 이끌었다.
해발 1천500m 정도의 분지에 형성된 메데인에서도 산토도밍고는 외곽의 가파른 산비탈 동네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 2천여m다.
지금도 마을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좁은 데다가 여러 정류장을 거쳐야 해 가장 높은 곳까지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케이블카로는 단 몇 분 만에 500m를 오를 수 있었다.
케이블카 아래로는 산자락을 따라 생긴 수많은 무허가 주택들이 보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집들의 지붕이 벽돌 기와에서 간단한 슬레이트로 바뀌는 모습이 확연했다.



케이블카에 탄 메데인 시민 페르난도 씨는 "저런 집들은 보통 두어 달에 걸쳐 짓는다. 차량용 도로가 없고 산길만 난 곳도 많아서 건축에 필요한 자재는 직접 옮기거나 동물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심에서는 살아갈 여력이 안 돼 산자락에 불법으로 얼기설기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케이블카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설치한 것이다.
산토도밍고 주민이자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인 마리아 씨는 아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경제가 엉망이 된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바로 옆 이웃이자 한때 같은 나라였던 콜롬비아로 탈출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여전히 어렵기는 해도 그나마 고국에서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간다.
마리아는 "도심으로 출퇴근하면서 매일 하루 두 차례 탄다"며 "나 같은 사람한테도 요금이 비싼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요금은 주민의 경우 1회 최대 2천페소 수준으로 약 600원가량이다.



아세베도 역을 출발한 케이블카는 중턱의 안달루시아 역, 포풀라르 역을 거쳐 가장 높은 산토도밍고 역까지 총연장 2.07㎞를 올라간 다음 회차해 다시 아세베도 역을 향해 내려갔다.
아세베도 역에서는 지상철을 타고 시내로 나갈 수 있다. 흔히 '메트로'(metro)는 문화권을 불문하고 지하철을 뜻하지만, 메데인의 메트로는 거의 지상으로 달린다.
콜롬비아는 수도 보고타에도 메트로가 없는데 제2 도시 메데인에는 있다.
보고타는 1950년대부터 지하철 건설 논의를 시작해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럴싸한 대중교통이라고는 서울이 벤치마킹한 중앙버스차로 정도가 전부여서 승용차로는 목적지에 언제 도착할지 예측이 매우 어렵다.
보고타에도 케이블카가 생기기는 했는데 메데인보다 훨씬 늦은 2018년 12월 개통했다.
반면 메데인은 오랜 시간 대중교통 체계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메트로는 물론이고 시내버스도 체계적으로 운영한다.
메트로, 케이블카, 트램, 광역버스, 지선버스 등이 산토도밍고와 같은 외곽 빈민가를 포함한 도시 곳곳을 연결한다.



메데인이 주도(州都)로 있는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주는 '우리가 보고타보다 낫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대중교통도 그 원천 중 하나다.
바로 그런 대중교통 시스템에 도시 하층민의 접근이 쉬워진 것은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시내로 나간다던 청년 알베르토 씨는 산등성이를 가리키며 "봐라. 저기 제일 위에 사는 사람들도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멀리까지 일하러 갈 수 있다. 예전에는 걷거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이들에게는 케이블카가 곧 경제"라고 말했다.


j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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