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역 후문 우수관 공사로 보도블록 걷어내…불법 주정차 점령
차도로 밀려난 보행자들, 휠체어 타고 '위험천만' 통행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양희문 인턴기자 = "보행로는 포장도 안 돼 있고 차들은 막 대놓지, 차도로 내려갔더니 턱이 높아서 올라갈 수가 있나. 차들이 쌩쌩 달리면 옴짝달싹 못 해…"
지난 14일 우수관 공사를 이유로 보도블록이 모두 벗겨져 흙먼지만 풀풀 날리는 강원 춘천역 후문 비포장 보행로 앞에서 김모(78)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춘천역 인근 아파트에 사는 김 할아버지는 호흡기 질환 때문에 3년 전부터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우수로 공사를 한답시고 지난해 말 뒤집어놓은 보행로에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찾을 수 없었다.
비가 온 뒤에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움푹 팬 비포장 길에 주차장인지 보행로인지 헷갈릴 정도로 주차된 차들 탓에 김 할아버지에게 춘천역으로 가는 200m는 200㎞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춘천시는 2016년 7월 캠프페이지 주변 침수 예방을 위해 하수도정비사업에 나섰고, 춘천역 후문은 지난해 말 우수관 공사를 시작하면서 보행로 보도블록을 걷어냈다.
그러나 우수관 공사가 장기화하면서 주민들은 통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에 쌓인 자재에 군데군데 자란 잡초는 공사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았는지 짐작게 했다.
시민 정모(62)씨는 "인근에서 공사하고 있어 대형트럭과 굴착기가 매일 같이 지나다닌다"며 "보행로를 저렇게 해놨으면 빨리 공사를 마무리해야지, 언제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보행로가 아닌 차도로 걷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차도 역시 이곳저곳이 갈라지고 패여 있어 주민들이 겪는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김 할아버지처럼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공포 수준이다.
차도에서 보행로로 올라가도록 돕는 휠체어 진입판도 없어 휠체어로는 한뼘 남짓한 경계석 앞에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턱을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다 때마침 순찰하던 경찰관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을 정도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다니기에는 힘든 길이다.
밤에 움푹 팬 부분을 미처 보지 못한다면 그대로 고꾸라져 2차 사고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크다.
최근에 시청 누리집 민원게시판에는 가족이 휠체어를 타고 춘천역 후문을 지나다니고 있어 사고라도 나면 누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왜 현재까지도 공사가 안 된 것인지 묻는 민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위해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지나다니는 대학생 주모(21)씨는 "비포장 길을 피해 차도로 다니는데 큰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휘청거린다"며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주씨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는 분들은 정말 위험해 보이더라"며 "도대체 공사가 언제 끝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렇다 할 공사 진행 상황을 알지 못하는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있어 시에서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시에서 위탁받아 공사를 진행하는 한국환경공단 측 관계자는 "가로등, 상수도, 가스관 등 지상 장애물과 민원이 많아 작업속도가 2∼3주가량 늦어졌다"며 "소수자를 배려하지 못해 죄송하고, 이번 주 증으로 보행로 포장 작업을 끝내겠다"고 말했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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