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니치신문, 칼럼서 '한국에 대한 NO', '관계 다시 맺기' 언급
첨단분야 집중규제…日, 中에 접근하며 韓과 '협력→견제' 기조 변화"日정부, 한국 중요성 인식…정책기조 변화 성급한 추측" 신중론도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예전에 '미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었다면, 이번엔 '한국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다."
15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야마다 타카오 특별편집위원이 기명 칼럼을 시작하면서 쓴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1989년 저서인 베스트셀러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에서 꺼내 썼다.
미일 관계를 분석한 이 책에서 'NO'의 대상은 미국이었는데, 야마다 위원은 한국을 상대로 단행한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한국에 대한 NO'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야마다 위원은 이 칼럼에서 "한국과 (갈등을 빚으며)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던 일본이 왜 변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많은 일본인은 문재인 정권에 불신을 갖고 있다"며 "불신을 명확하게 전해 관계를 다시 맺는 일의 첫걸음이라면 수출규제는 (일본에)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야마다 위원이 '한국에 대한 NO', '관계 다시 맺기'를 언급한 것은 최근 일본 정부가 단행한 경제보복 조치가 참의원 선거용이나 일과성 불만 표출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 기조를 수정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일각의 분석과 뜻이 통한다.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를 둘러싸고는 단지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공격을 넘어 한미일 삼각공조라는 오래된 틀을 깨트리고 '이익을 공유하는 이웃'이라는 한일관계의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베 정권 이후 일본 정부는 이미 외교청서나 총리의 연두 시정연설에서 '전략적 이익 공유',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 '상호 신뢰' 등 우호적인 표현을 하나씩 지워왔고, 그러는 사이 중국과는 급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모습을 보여왔다.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를 단행한 대상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한국이 우위에 있는 첨단 산업과 관련된 소재라는 것도 이번 조치가 대법원판결에 대한 보복 이상일 수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공격 대상을 IT 기업 화웨이로 삼아 사실상 '기술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일본은 이번 보복 조치를 통해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보이는 첨단 산업 분야를 공격 대상으로 겨냥해 포화를 쏟아부었다.
이미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의 선두에 서있는 한국기업들이 시스템 반도체와 지능형 반도체 등 비메모리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개발을 통해 산업체질을 한단계 발전시키려는 시점에 일본정부가 최첨단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소재의 수출을 콕 집어 규제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한일이 반도체 제조와 소재 제공에서 협력하면서 함께 공급만을 만들었던 협력 체계를 깨려하는 것인 만큼 이번 보복 조치는 일본의 한국 정책이 '협력'에서 '견제'로 변화됐음을 의미한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의 부정을 한국에 대한 정책 기조를 바꿀 포인트로 삼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야마다 위원은 칼럼에서 '한일청구권 협정의 부정'이 '한국에 대한 NO'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하며 했다.
그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연합국과의 강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배상 협정을 넘어서는 청구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일본 정부가 경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본 정부가 단행한 보복 조치가 한국에 대한 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것이라는 분석은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쿠조노 히데키(奧園秀樹) 시즈오카현립대(국제관계학) 교수는 "일본 정부는 한국이 여전히 안전보장 면에서 중장기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일본이 '65년 프레임' 이전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추측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보다는 한국 정부에 대해 충격을 주려는 의도가 강한 조치"라며 "한국 정부가 대화를 위해 65년 프레임 자체를 깰 생각은 없다는 메시지를 일본에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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