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막말…민주 유색 여성의원 4인방 공격 파문 이용해 백인 지지층 결집 시도
민주 공세 계속·공화도 우려…"트럼프 발언, 美의 오랜 '멜팅팟' 원칙에 반해"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미국 민주당 유색 여성 하원의원 4인방을 겨냥해 노골적인 인종차별 공격을 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적반하장으로 되레 사과를 요구하고 "미국이 싫으면 떠나라"고 공세를 폈다.
세계 각지의 이민자를 수용,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이란 별칭을 얻어가며 번영을 이룬 미국의 근본 원칙을 뒤흔드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고는 오히려 파문의 확산을 지지자 결집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양상이다. 결국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오전 "급진적 좌파 여성 하원의원들은 언제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인, 그리고 대통령실에 사과하려는가, 그들이 사용한 더러운 언어와 끔찍한 말들에 대해서 말이다"라고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연례 미국산제품 전시회' 연설에서도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불평뿐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얘기는,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는 것"이라며 "그들은 우리나라를 열정적으로 증오한다"고 공세를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이 인종차별적으로 여겨지는 걸 우려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내게 동의한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내가) 미국을 다시 하얗게 만든다고 하는데 아주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역공했다.
그는 '그들'이 누구인지 거명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지난 4월 4인방 중 하나인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이 9·11 테러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다'는 정도로 표현했다가 파문을 일으킨 사건, 4인방의 대표격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 뉴욕에 제2의 본사를 마련하려던 아마존의 계획에 반대했던 일 등을 거론해 타깃을 분명히했다.
전날 민주당 유색 여성 하원의원 4인방을 겨냥해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며 인종차별적 '트윗 공격'을 했다가 당사자들 및 민주당이 반격에 나서자 백인 지지층 결집을 노리며 오히려 공세 수위를 높인 것으로 관측된다.
이스라엘인에 사과하라는 발언 역시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유대계 표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소말리아계인 오마르 의원은 지난 2월 대표적 유대인 단체를 공개 비난했다가 반유대주의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사과한 바 있다.
코르테스 의원은 트윗을 통해 "4명의 유색 미국 여성의원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던 어제 대통령의 (트윗) 발언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특징적 발언"이라고 반격했다.
펠로시 의장도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혐오 발언을 규탄하는 하원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면서 공화당 의원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공화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선을 넘었다. 발언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하원의원 중 유일한 흑인인 윌 허드는 CNN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트윗은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했다. CNN은 이날 오후를 기준으로 16명의 공화당 상·하원 의원이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이후 민주당에서는 펠로시 의장을 비롯해 90여명이 비난 세례에 동참했으나 공화당은 대체로 일단 침묵을 지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 "정책에 집중하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고하면서도 4인방을 겨냥해 "공산주의자들이며 반유대적"이라고 맹비난했다.
백인이 아닌 미국인은 미국인이 아니라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정치·경제적 번영의 토대를 마련했던 미국의 근본원칙에 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차별적 언사를 일삼는 것으로 유명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례도 적지 않지만 이번에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인종을 어젠다로 설정하려는 의도가 가미되면서 수위가 상당히 높다는 평이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세대를 걸쳐 자랑스럽게 여겨온 '멜팅팟' 원칙에 직접적으로 반하며 운영되는 미국을 창조하고 싶은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인종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반(反)미국적"이라고 비판했다.
nar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