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과규정 두고 선분양 유도할지 관심…채권입찰제 시행도 거론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위한 세부 기준을 마련 중인 가운데 상한제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일반분양을 준비 중인 재건축 단지나 토지 매입이 끝난 주택사업도 상한제 범주에 포함되는 게 아니냐며 사업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당첨자에게 주어지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채권입찰제 등의 방식으로 환수할지 여부도 관심이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안에 담을 세부 기준을 다듬고 있으며 업계에서 우려하는 소급 적용 문제나 시세차익 환수 방안에 대해서도 복안을 갖고 있다"는 입장이어서 업계는 정부 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후분양 검토 단지 경과규정 두고 선분양 유도할까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9·13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강남권을 비롯한 재건축 추진 단지에 계속해서 투자수요가 몰리고, 이로 인해 인근 지역과 일반아파트로 집값 상승세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재건축 단지들이 후분양을 선택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규제를 피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상한제 외에는 고분양가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본 정부가 9·13대책 발표 1년도 안 돼 다시 상한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은 상한제 시행 이후 관리처분인가 신청 단지부터, 일반 사업은 사업계획승인 신청 단지부터인 상한제 적용 기준이 앞으로 '입주자모집공고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과거 사업 단계별로 상한제 적용을 유예하면서 2007년에 과도한 '밀어내기식' 인허가가 이뤄졌고, 이에 따라 실제 분양가 인하 효과가 적었다는 것도 사업 단계별 유예 가능성을 작게 보는 이유다.
이렇게 되면 현재 강남구 삼성동 상아2차, 강남구 개포 주공1단지, 반포동 한신3차·경남아파트(원베일리), 반포 주공1·2·4주구(주택지구), 송파구 미성·크로바, 강동구 둔촌 주공 등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일반분양을 앞둔 재건축 단지들이 당장 '상한제'의 사정권에 든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행령 공포 즉시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일정 기간 시행을 유예하는 경과규정을 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현재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는 이미 분양가 자율화 체제하에 사업계획과 조합원 추가부담금이 어느 정도 확정된 상태여서, 상한제가 적용돼 분양가가 관리처분 이하 금액으로 떨어지면 조합원의 추가부담금이 증가해 사업 혼란과 조합측 반발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적용 대상을 법 시행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 단지부터 하더라도, 공포후 법 시행 시기만 후분양 도래 시점 전까지 6개월∼1년가량 유예하면 일반분양이 임박한 사업들은 최소 HUG의 분양가 통제 하에 선분양을 유도할 수 있다.
후분양을 통한 '시세 분양'은 막고, 선분양을 유도해 조합원의 피해를 줄이면서 강남권에 일반 아파트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법리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소급' 논란도 최소화할 수 있다.
HUG는 자체 분양보증 심사 기준에서 해당 지역에 1년 내 신규 분양단지가 있을 경우 직전 분양가를 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어 현재 분양가 이상 더 올릴 수도 없다.
지난달 "주변 시세대로 분양하겠다"며 선분양 대신 준공후 분양을 택했던 삼성동 상아2차는 준공 예정일이 2021년 9월이고, 원칙상 후분양이 가능한 '준공후 80%' 시점도 최소 2021년 1분기는 돼야 한다.
반포 주공1·2·4주구(주택지구)처럼 아직 이주도 시작하지 못한 단지는 일반분양 시기를 잡지 못해 분양가 상한제 시행 시기에 따라 희비가 갈릴 전망이다.
다만 현대건설[000720]은 지난 2017년 이 아파트의 시공사로 선정되면서 일반분양분 1천560여가구에 대해 3.3㎡당 5천100만원의 최저 분양가를 보장해주기로 제안한 바 있어 상한제 대상이 될 경우 시공사 측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재건축뿐만 아니라 이미 토지확보를 마친 민간 자체 사업도 상한제 시행 시기에 민감하기 마찬가지다.
특히 민간사업은 이미 금융기관을 통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일으켜 토지 매수에 막대한 땅값이 지불된 상태여서 상한제 적용으로 분양가가 크게 낮아질 경우 사업이 위태로워짐은 물론 시행자의 도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호건설은 세운3구역을 비롯해 세운재정비촉진지구내 3개 구역의 토지를 고가에 매입했고 일레븐건설은 용산 유엔사 부지를 2017년 당시 입찰 예정가보다 2천억원이나 비싼 1조552억원에 매입하는 등 상한제가 작동하지 않던 시절에 고가에 매입한 토지들이 수두룩하다.
신영이 여의도 MBC 방송국 부지에 짓는 '브라이튼 여의도' 역시 HUG 규제로는 적자가 불가피해 후분양을 검토 중이었다.
이들 단지는 HUG 규제를 피해 후분양을 검토했으나 상한제 여파로 선분양을 돌아설 가능성이 커졌다.
아직 사업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중소규모 단지들은 과거 용산 한남더힐이나 나인원한남처럼 '임대후 분양'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매입 가격이 감정가를 초과할 경우 '실매입가'를 인정해줬던 기존 택지비 산정 기준도 재정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알박기 토지의 고가 매입, 각종 민원 비용 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는 "예측 불가한 정부 정책으로 인해 민간의 사업이 막대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최소 사업계획승인 신청 단지 등으로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시세차익 환수 위해 채권입찰제 적용할까
정부는 일단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인한 청약 과열을 막기 위해 전매제한 기간을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전매제한은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70% 미만이면 4년, 70% 이상이면 3년이 적용된다. 그러나 청약조정지역은 현재도 3년의 전매제한이 있는 만큼 상한제 주택에 대해서는 전매제한 기간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공공택지내 상한제 대상 아파트의 전매제한 기간은 규제지역 여부와 시세차익 규모에 따라 최소 3년에서 최대 8년까지 적용된다.
과거 2007년 민간택지 상한제 도입 당시 수도권 민간택지의 전매제한 기간은 전용 85㎡ 이하의 경우 7년, 85㎡ 초과는 5년이었다. 여기에다 그린벨트 공공택지처럼 일정 기간의 거주의무를 둘 수도 있다.
채권입찰제가 도입될지도 관심이다. 과거 2007년 상한제를 도입할 때는 과도한 시세차익을 막기 위해 채권입찰제를 병행하기로 했다.
다만 채권액이 인근 집값 상승을 견인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채권매입액 상한액을 시세의 80% 선으로 조정했다.
정부는 일단 채권입찰제 시행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참여정부 이후 판교 외에 채권입찰제를 적용한 단지가 많지 않고 채권을 상한액까지 써낼 경우 사실상 무주택자 위주인 현재의 청약시장에서 당첨자의 부담이 커지면서 분양가 인하 효과도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최근 청약제도가 무주택 실수요 위주로 개편됨에 따라 무주택자에게 높은 시세차익을 안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러나 '로또' 논란이 거세고, 이로 인해 청약 광풍이 나타날 경우 그 후유증도 만만찮아 정부 내 고민이 크다.
전문가들은 "전매제한만으로 '로또화'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현재도 청약 가점을 높이기 위해 입양·위장이혼·위장전입 등 각종 불법과 편법이 판치는데 상한제를 하면 로또 아파트 당첨을 위한 각종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채권입찰제를 시행하되 채권상한액을 적정선으로 낮추는 방안, 과거 판교에서처럼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에만 적용하거나 9억원·12억원처럼 금액대별로 채권액을 차등적용 하는 방안 등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sm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