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영화 '봉오동 전투'에 일본 배우 3명 '일본군' 역으로 등장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올여름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에 출연한 일본 배우들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일제강점기를 다룬 한국 영화에서 일본 배우 출연은 종종 있었지만, 최근 한일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선보이는 항일영화 속 캐릭터라 주목받는다. 다음 달 7일 개봉하는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에는 기타무라 가즈키 등 3명의 일본 배우가 출연한다.
1920년 6월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해 승리를 거둔 독립군 전투를 그린 작품으로, 유해진과 류준열, 조우진이 주연을 맡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강렬한 인상을 지닌 기타무라 가즈키(50)는 독립군을 토벌하는 '월강추격대' 대장을 연기했다. 냉혹하고 잔혹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한국드라마 '시그널'을 리메이크한 일본 드라마 '시그널 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에서 주연을 맡은 유명 배우다. 영화 '용의자 X의 헌신' '고양이 사무라이' '양의 나무' 등에도 출연해 국내에도 팬들이 많다.
그처럼 인지도가 높은 배우가 항일영화 속 일본군으로 출연한 것을 두고 일본 우익 매체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일본 보수계열 주간지 주간신조(週刊新潮)는 지난 5월 30일 자에 '봉오동 전투'를 "독립운동가들이 이끄는 항일 게릴라단의 싸움이 테마인 반일 영화"로 폄훼한 뒤 "오는 9월부터 NHK 아침 드라마 출연도 예정된 기타무라 가즈키가 매국노로 몰릴지도 모르는 이런 종류의 영화에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일본 연예 기자의 코멘트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잡지는 영화가 일본 내에서도 문제가 될 경우 그가 현재 출연 중인 CF 광고에서 하차할 가능성도 거론했다. 그가 소속사 반대에도 반일영화에 출연한 것은 "어떤 역이든 해내는 게 배우"라는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이 잡지는 전했다.
반대로 국내에선 그의 출연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 커뮤니티 등에서 "소신이 대단하다" 등의 응원이 이어진다.
기타무라 가즈키 외에 일본 중견 배우 이케우치 히로유키(43)와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에서 남자 주인공 목소리 연기한 다이고 고타로(19)도 각각 일본군과 소년병으로 합류했다.
'봉오동 전투' 측은 개봉도 전에 일본 배우 출연이 화제가 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이 영화 관계자는 "일반적인 절차대로 해외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일본 배우들을 섭외했고,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며 구체적인 출연 배경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는 온갖 역경을 딛고 새 문자 창조에 나선 세종대왕(송강호)과 그를 음지에서 도운 신미 스님의 이야기를 그린다. 항일 영화는 아니지만, 초반에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일본에서 온 승려 일행이 당시 억불정책을 펴던 세종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팔만대장경 원판을 달라고 떼쓰는 대목이다. 원판을 줄 때까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궁궐에서 시위를 벌이던 이들은 신미 스님(박해일)의 일갈에 결국 발길을 돌린다.
신미가 산스크리트어로 "너희가 거지인가? 중국, 티벳, 거란, 고려 모두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이 직접 만들었으니 너희도 너희 손으로 만들라"고 하자, 일본 스님 규주 등은 "살려달라. 이번에도 대장경판을 받아 가지 못하면 식솔들이 다 죽는다. 고려 같은 대국도 16년이나 걸린 사업인데, 저희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고 답한다. 팔만대장경의 우수성과 신미의 강단을 보여주는 대목이어서 통쾌함을 준다.
일본 규주 역을 맡은 배우는 일본 배우 야마노우치 다스쿠. 그는 이준익 감독 '박열'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박열(이제훈)과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를 변론한 후세 다쓰지 변호사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2001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출연작이 초청돼 한국에 왔다가 한국에 정착해 영화 '덕혜옹주' 등에 출연하며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
반면 '수상한 그녀' 등에 출연한 배우 심은경(25)은 시사성 강한 일본 영화에 출연, 주목받고 있다. 심은경은 지난달 28일 현지서 개봉한 영화 '신문기자'에서 정권 비리를 파헤치는 여성 신문기자 역으로 발탁됐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여주인공 요시오카 에리카 역을 일본어로 연기했다.
일본 언론들은 영화 속 스캔들이 아베 총리가 연루된 사학 스캔들과 닮아 일본 배우들이 모두 출연을 거부하는 바람에 심은경이 주연을 맡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 영화는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7위에 오르며 약 3억엔(34억원)의 누적 매출을 올리는 등 잔잔한 호응을 얻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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