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검찰이 10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보육교사 피살사건으로 기소된 택시기사 박모(50)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에 항소했다.
제주지검은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관계를 오인했다"며 제주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17일 밝혔다.
채증법칙이란 법관이 사실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증거를 취사선택할 때 지켜야 할 법칙이다.
검찰이 제시한 유력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박씨의 강간 등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미세섬유와 폐쇄회로(CC) TV 영상, 과학수사로 도출한 모든 간접 증거가 오직 박씨 한 사람만을 가리키고 있다며 박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심리를 맡은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검사가 제시한 대부분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했는 지를 밝히기 위한 미세섬유 증거, 피고인의 차량으로 보이는 택시가 녹화된 폐쇄회로(CC)TV 영상 등 모두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범행이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간접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사실이 증명돼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새벽 자신이 몰던 택시에 탄 보육교사 A(당시 27·여)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애월읍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강간 등 살인)로 구속기소됐다.
이 사건은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며 장기 미제로 남아있었다.
경찰은 2016년 2월 장기미제 전담팀을 꾸리면서 수사를 재개했다.
경찰은 박씨의 차량 운전석과 좌석, 트렁크 등과 옷에서 A씨가 사망 당시 착용한 옷과 유사한 실오라기를 다량 발견, 미세증거 증폭 기술을 이용해 증거를 확보했다.
경찰은 확보한 증거물을 바탕으로 지난해 5월 18일 박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해당 증거가 박씨의 범행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검찰은 1차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보강수사를 진행, A씨의 피부와 소지품에서도 박씨가 당시 착용한 것과 유사한 셔츠 실오라기를 찾았다.
또한 이 같은 증거와 당시 택시 이동 경로가 찍힌 CCTV 증거를 토대로 사건 당일 박씨가 차량에서 A씨와 신체적 접촉을 했다고 판단, 지난해 12월 박씨를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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