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갈등관계 美에 대한 정치적 압박"…한국 학생 120여명도 수학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 당국이 모스크바의 미국계 학교 교사 수십명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해 학교 운영이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 학교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등 서방 국가 외교관과 기업인 자녀들뿐 아니라 한국 외교관과 교민 자녀들도 많이 다니고 있다.
모스크바 소재 미국계 유치원·초·중·고등 과정 통합학교인 '앙글로-아메리칸 스쿨'(Anglo-American School of Moscow) 교장은 최근 학부모들에 보낸 서한에서 "러시아 외무부가 (주러) 미국 대사관에 (앙글로-아메리칸 스쿨) 교사들을 위한 비자를 예년처럼 발급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왔다"고 밝혔다.
교장은 "가을학기를 위해 (교사들에게) 필요한 모든 비자를 발급받지 못할 경우 입학생 수를 줄이고 강의 할당을 재조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6일 자 기사에서 러시아 외무부가 미국, 영국, 캐나다 3개국 대사관이 운영하는 앙글로-아메리칸 스쿨 교사 30명에게 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지난 1949년 미국, 영국, 캐나다 3개국 공관이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는 이 학교에는 60여개국 출신 학생 1천200여명이 공부하고 있으며, 영어권 출신이 핵심인 교사 150명이 재직하고 있다.
학교에는 서방국 외교관과 기업인 외에 부유층 러시아인 자녀들도 다니고 있다.
모스크바 주재 한국 외교관과 기업 주재원, 개인 사업가 자녀 120여 명도 공부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이번 러시아 당국의 조치를 외교관 자녀들의 학습을 제한함으로써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는 미국에 정치적 압박을 가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주러 미국상공회의소 소장 알렉시스 로드지안코는 러시아 정부가 2016년 미국에 의해 폐쇄된 뉴욕과 메릴랜드의 자국 외교시설을 되찾기 위해 미국에 압박을 가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6년 12월 러시아의 대선개입 해킹에 대한 보복 조치로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고 뉴욕과 메릴랜드에 있는 러시아 외교시설 2곳을 폐쇄한 바 있다.
로드지안코는 학교의 활동이 제한되면 일부 학부모들은 모스크바에서의 업무를 포기하거나 자녀들을 다른 곳의 기숙학교로 보내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앙글로-아메리칸 스쿨 이사를 맡고 있는 미국 대사관 통상담당관은 15일 모스크바 주재 서방 대사관들에 보낸 서한에서 미국이 정치적 이견에 학생들을 끌어들이지 말도록 크렘린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그는 최악의 경우 교사 부족으로 8월 20일부터 시작하는 새 학기에 일부 학생들이 등록을 못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NYT는 러시아 당국의 이번 조치가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학교 설립국인 미국, 영국, 캐나다 출신 학생들은 입학 우선권이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의도와 달리 미국 학생들이 학교에서 자리를 잃을 가능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러 양국의 외교 공방전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16년 말에도 모스크바의 앙글로-아메리칸 스쿨이 폐쇄될 것이란 언론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됐었다.
지난해 러시아 당국은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국 총영사관 부속 학교로 운영되던 '앙글로-아메리칸 스쿨'을 실제로 폐쇄했다.
하지만 러시아 외무부는 러시아 당국이 근거없이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는 NYT 보도와 미국 학교 측 주장에 대해 "노골적 거짓말"이며 "정보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외무부는 "모스크바 미국 학교 교사들은 미국 대사관 직원 자격으로 외교관 여권을 소지하고 러시아로 입국한다. 하지만 학교는 상업적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민간 업체에서 일하는 교사가 미국 외교관으로 외교적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반박했다.
외무부는 이어 "이 학교는 어떠한 법적 기반도 없으며 미국 측도 이를 잘 알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여러 해 동안 미국 측에 협상을 통해 학교의 지위를 합법화하고 모든 문제를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해결하자고 제안했지만 미국 측은 정상적 대화 대신 사건을 이슈화하는 도발을 계속해 왔다고 주장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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