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실질가치 훼손 없어" vs 검찰 "사실상 분식회계 자백"
법원, 수사 본류 분식회계에 "다툼 여지"…삼바 임원들 책임 미루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김태한(62)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대표 등에 대해 검찰이 분식회계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됨에 따라 수사 방향 등을 두고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법원이 "주요 범죄 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수사 '본류'인 분식회계 혐의 자체에 의문을 던진 터라 '최종 책임자'를 향해 가던 수사에 난항이 예상된다.
그러나 검찰은 회계법인과의 허위진술 공모, 금융당국 조사 때와 달라진 진술 내용, 임직원 8명이 구속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이뤄진 증거인멸 시도 등을 근거로 들며 "수사 방향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 김태한, 구속심사서 눈물로 "분식 아냐" 주장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이 전날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등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유는 "주요 범죄 성부(성립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증거수집이 돼 있는 점, 주거 및 가족관계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대표와 함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삼성바이오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모(54) 전무, 재경팀장 심모(51) 상무 역시 비슷한 사유로 구속 위기에서 벗어났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며 종속회사(단독지배)에서 관계회사(공동지배)로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장부상 회사 가치를 4조5천억원 늘린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회계처리 당시엔 미국 합작사인 바이오젠의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으로 인한 부채를 감췄다가 2015년 말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지자 회계처리 기준을 부당하게 바꿨다는 것이다.
검찰과 삼성바이오 양측은 대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다투지 않았지만, '죄가 되는지'를 놓고는 해석이 크게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측은 영장실질심사에서 "회계기법에 관한 이야기일 뿐, 본질적으로 기업의 실질가치를 고의로 훼손시킨 분식회계가 아니다"란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측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현실화함에 따라 콜옵션 가치를 산정해 부채로 반영하게 됐고, 동시에 삼성바이오가 가진 삼성에피스 지분만큼의 평가이익도 반영하는 방식으로 자본잠식을 피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김 대표는 이번 사건과 바이오 산업의 미래 및 국내 경제 상황 등의 관련성을 강조하면서 눈물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김 대표의 이런 주장에 대해 '사실상 분식회계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그대로인데 회계방식 변경이라는 '꼼수'를 통해 자본잠식을 피한 것 자체가 분식회계란 것이다.
게다가 검찰은 사건 연루자들의 진술과 태도가 금융당국 조사 때와 계속 바뀌는 지점도 지적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는 금융당국 조사에서 "2014년까지 바이오젠이 가진 콜옵션 가치는 평가불능 상태였다", "(콜옵션 조항이 담긴) 합작투자계약서를 사전에 회계법인과 공유했다"는 주장을 펼쳤으나, 이는 검찰 조사단계에서 다 뒤집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균열이 드러나는 지점에 대해서는 김 대표 등 관련자들이 자신은 "모른다"며 서로 책임을 떠미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회계 처리는 기본적으로 CFO의 영역이라 구체적으로 관여한 바가 없다"는 입장이고, CFO인 김 전무는 "회계처리 과정 전부를 김 대표에게 보고·승인받았다"며 엇갈린 진술을 내놓고 있다.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김 대표와 검찰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해석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상장된 삼성바이오 주식을 개인적으로 사들이면서 매입비용과 우리사주조합 공모가의 차액을 현금으로 받아내는 방식으로 28억여원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도 받는다.
김 대표는 "회사 성장 기여에 대한 정당한 성과 보수"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당시) 미래전략실도, 로펌도 문제 소지가 있다고 말한 돈을, 이사회 의결 등도 거치지 않고 몰래 받아 갔다"는 입장이다.
◇ "수사, 계속 전진"…검찰 인사·日경제보복 등 변수
삼성바이오 수사는 증거인멸 관련 혐의로 삼성임직원 8명을 구속한 뒤 최근 본류인 분식회계 혐의 규명에 속도를 내왔다.
그러나 이번 본안 관련 첫 번째 영장부터 불발되며 수사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법원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김 대표에 대한 세 번째 영장 청구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지난 5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김 대표의 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검찰 관계자는 "혐의의 중대성, 객관적 자료 등에 의한 입증의 정도, 임직원 8명이 구속될 정도로 이미 현실화된 증거인멸, 회계법인 등 관련자들과의 허위진술 공모 등에 비춰 영장 기각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추가 수사 후 영장 재청구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김 대표의 신병을 확보한 뒤 최지성(68)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전·현직 그룹 수뇌부들을 소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로 인한 최종 수혜자가 이재용(51)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지목되는 만큼,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한 직접 조사도 불가피하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윗선으로 가는 첫 번째 길목부터 벽에 가로막히며 수사 진행 속도나 입증 계획에도 일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사팀 중 상당수가 다음 달로 예정된 검찰 간부 인사 대상자에 포함된 점과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가 강도를 높이는 상황 등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계속 진전해 나가는 것에는 변화가 없다"며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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