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해군, 먼거리 탓에 말로만 자제 요구했을 뿐 저지 못 해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이란의 영국 유조선 나포로 이란과 서방 간 갈등이 더욱 고조되는 가운데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음성이 공개됐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시키는 대로 하면 안전할 것"이라며 영국 유조선을 자기 쪽 항구로 끌고 가려는 순간, 영국 함정은 사건 현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이란 측에 자제를 요구할 뿐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1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 있는 해상 안전위험 관리회사 '드라이어드 글로벌'(Dryad Global)은 당시 이란 혁명수비대와 영국 해군의 대응을 보여주는 녹음을 공개했다.
앞서 이란 혁명수비대도 사건 다음 날인 20일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억류하는 모습이 담긴 2분 길이의 동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음성에 따르면 당시 영국 해군 함정으로는 유일하게 걸프 해역에 배치된 구축함 '몬트로즈'(HMS Montrose) 함의 한 장교는 스테나 임페로 호가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항해할 수 있게 허용돼야 한다고 단호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그러나 한 이란 장교는 스테라 임페로 호에 항로를 바꿀 것을 요구하며 "시키는 대로 해라, 여러분들은 안전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내용이 녹음됐다.
그는 이어 스테나 임페로 호가 보안상의 이유로 추적을 받고 있다며 즉각 항로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
반면 영국 해군 장교는 유조선을 향해 "여러분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해협에서 통과통항(transit passage)을 할 때, 여러분의 항로는 국제법에 따라 장애 혹은 방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되풀이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이 장교는 또 이란 순시선 쪽에 "당신들이 스테나 호에 불법으로 승선을 시도하는 식으로 국제법을 위반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주길 바란다"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장교의 말은 이란 측의 다음 행동을 막지는 못했다.
앞서 이란 측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이란 측은 영국 해군 측의 요구에도 나포를 강행했다.
혁명수비대는 소형 무장 쾌속정(모터보트) 여러 대와 헬리콥터 1대를 동원, 공중과 해상에서 유조선을 둘러쌌다. 이후 헬리콥터를 이용해 특수부대 요원으로 보이는 복면을 쓰고 무장한 이란군을 유조선에 승선시켰다.
영상에 따르면 이란군에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유조선은 매우 빠른 속력으로 도주하는 것처럼 보였고 한동안 추격을 당한 끝에 결국 제압당했다.
혁명수비대는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으로 진입하면서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입구가 아닌 출구 해로로 거슬러 항해해 다른 선박의 안전을 위협했다고 나포 배경을 밝혔다. 또 이란 어선을 충돌했는데도 구조 요청에 응하지 않고 항해를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영국 관리들을 인용, 몬트로즈 함은 현장으로부터 약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영국 유조선이 나포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전했다.
영국 해군은 이란과 미국의 충돌 위험이 높아가자 자국 유조선의 나포에 대비한다며 지중해에 있던 구축함 덩컨(HMS Duncan) 함을 이달 내로 걸프 해역에 배치할 예정이었으나 한발 늦은 셈이 됐다.
앞서 지난 10일에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무장 쾌속정 여러 대가 영국 BP의 유조선 '브리티시 헤리티지' 호 나포를 시도한 바 있다. 당시에는 이 유조선을 호위하던 몬트로즈 함이 포격하겠다고 경고하자 이란 측은 물러갔다.
토비아스 엘우드 영국 국방차관은 22일 이번 이란의 나포를 "적대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영국 해군이 "세계 각지에서 영국이 이익을 지켜내기에는 너무 소규모"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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