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휘장 먹칠에 백색테러까지…혼돈의 홍콩 '반중-친중' 극한대립

입력 2019-07-22 13:21   수정 2019-07-22 18:06

中휘장 먹칠에 백색테러까지…혼돈의 홍콩 '반중-친중' 극한대립
송환법 반대 일부 시위대 과격화…친중파 추정 테러도 발생
"리더십 부재·'三無 세대' 젊은층 좌절이 극렬 갈등 유발"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의 대규모 시위가 폭력 사태로 얼룩지면서 '반(反)중국 대 친(親)중국'의 극한 대립 구도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사태를 중재할 리더십의 부재와 '삼무(三無) 세대'로 불리는 홍콩 젊은이들의 좌절이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양측의 대립이 더욱 격화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최 측 추산 43만 명의 홍콩 시민이 참여한 21일 송환법 반대 시위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일부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고 대법원 청사와 정부 청사 방향까지 나아가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특히 시위대 일부는 중국 중앙정부 대표 기관인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앞까지 가 중국 중앙정부를 상징하는 붉은 휘장에 검은 페인트를 뿌리고 날계란을 던지는 등 강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지난달 초부터 송환법 철폐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중국 중앙정부 기관을 시위대가 직접 공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 구성원들이 고성능 폭발물을 소지했다가 적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홍콩 경찰은 19일 밤 췬안 지역의 한 공장 건물을 급습, 고성능 폭발 물질인 TATP(트라이아세톤 트라이페록사이드) 2㎏를 포함해 각종 무기를 소지한 27세 남성을 현장서 검거하고 관련 용의자 2명을 더 체포했다.
체포된 27세 남성 로는 홍콩 독립 주장 단체인 '홍콩민족전선'의 일원이었다. 다른 용의자 탕(25)이 속한 '홍콩독립연맹'도 홍콩 독립을 주창하는 조직이다.
송환법 반대 시위의 '반중국' 색채가 짙어지면서 침묵을 지켰던 친중국 진영도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일에는 송환법 반대 시위에 맞서 공권력을 지지하고 질서 회복을 촉구하는 대규모 친중파 집회가 홍콩 도심에서 열렸다.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홍콩의 법질서를 파괴하면서 폭력을 마구 행사한다고 비난한 이 집회 참여 인원은 주최 측 추산 31만6천 명에 달했다. 이는 21일 송환법 반대 시위의 43만 명(주최 측 추산)에 버금가는 규모다.
21일 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옷을 입은 남성들이 각목 등을 들고 위안랑(元朗) 전철역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대를 마구 폭행하는 '백색테러'까지 벌어져 홍콩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홍콩 언론은 이들이 폭력조직인 삼합회 조직원들로 보이며,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송환법 반대 시위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친중파 배후설'을 제시했다.
이 백색테러로 다쳐서 병원으로 이송된 사람은 최소 36명에 달한다. 부상자에는 입법회 린줘팅(林卓廷) 의원과 한 여성 기자도 포함됐다.



이러한 극한 갈등에 홍콩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송환법 반대 시위 정국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홍콩의 '뉴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태가 이러한 양상으로 치닫는 데는 사태를 수습할 리더십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홍콩 중문대학의 정치학자 마웨(馬嶽)는 "캐리 람 행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를 듣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끄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이러한 전략은 시위대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더 많은 사람을 자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간이 흐르면 송환법 반대 시위가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를 홍콩 정부가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기대는 '희망 사항'에 불과하며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리더십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범민주 진영도 송환법 반대 시위대에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이 시위 주최 단체로 나서긴 하지만, 평화 시위 후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극렬한 충돌을 빚는 사태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별다른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최근 송환법 반대 시위가 민간인권전선 등과 같은 기존 조직이 아닌,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젊은 층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홍콩 야당인 공민당 지도자 앨빈 융은 "범민주 진영은 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과거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발휘했던 지도력을 더는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일부 젊은이가 과격 양상을 보이는 데는 현 홍콩 사회 상황에 대한 이들의 좌절감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SCMP는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 층이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사랑도 없는' 삼무 세대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와 비슷한 이 표현은 낮은 임금에 시달리면서 일하지만, 너무 높은 집값에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중국 중앙정부의 간섭으로 민주주의마저 누리지 못하는 홍콩의 젊은이들을 비유한 말이다.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6천 달러에 달하지만, 시간당 최저임금은 34.5홍콩달러(약 5천200원)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반면에 아파트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높아 평당 1억원을 넘는다.
홍콩 언론은 "사태를 수습할 리더십의 부재와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 층의 좌절이 겹치면서 이제 홍콩 시위 사태는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와 같은 장기화, 과격화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로이터]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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