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세계수영] '한국 수구의 아버지' 이인창 감독 "우리 수구 없어지지 않게…"

입력 2019-07-24 05:59  

[광주세계수영] '한국 수구의 아버지' 이인창 감독 "우리 수구 없어지지 않게…"
일본 수구 대표팀 출신 재일 교포 3세…1983년 한국 최초의 남자 수구팀 직접 선발
"일본도 18년 전에는 우리와 같아…수구 발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하겠다"



(광주=연합뉴스) 박재현 기자 = 일본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인창(59·일본 이름 기무라 고) 감독은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를 동생에게 맡기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락세인 한국 수구를 다시 일으켜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3일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근처 한 카페에서 남자 수구대표팀 이인창 감독을 만났다.
이날 한국 수구대표팀은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수구 15·16위 결정전에서 승부 던지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뉴질랜드를 꺾고 값진 1승을 따냈다.
풀 옆에 서서 큰 소리로 한국 선수들을 독려하던 이인창 감독은 권영균의 마지막 승부 던지기 슛이 들어가자 코치들을 끌어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이인창 감독은 재일 교포 3세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수구 선수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던 그는 일본 체육대학교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후 귀화했다.
대학교 4학년이던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 대표로 출전해 남자 수구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수구팀을 꾸릴 계획이었던 대한수영연맹은 재일 교포인 이 감독을 코치로 스카우트했다.
이 감독은 '수구 불모지'였던 한국에 씨앗을 뿌렸다. 1983년 그가 코치직을 맡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는 수구팀이 없었다.
이 감독은 "선수 선발부터 한참 걸렸다"며 "전국의 학교를 돌며 경영 선수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감독에게 부탁해 선수를 뽑아 상비군을 꾸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모인 '수구 초심자'들은 1년간의 맹연습을 거친 후 1984년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수구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들은 현재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한국 수구를 이끄는 중심 세대가 됐다.
'한국 수구의 아버지' 역할을 한 이 감독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까지 한국 팀 코치를 역임한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가업인 아버지의 플라스틱 가공 회사를 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수구 대표팀은 역대 최고 성적인 은메달을 수확했다.
사업을 위해 돌아간 일본에서도 그는 수구와 연을 계속 이어갔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일본대표팀의 코치를 맡았고, 이후에는 대학 수구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몸은 일본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한국 수구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코치 생활을 하면서도 늘 한국 수구를 지켜봤다"며 "힘들게 키워낸 한국 수구가 하락세를 걷고 있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이 감독은 한국에서 다시 수구를 일으켜 보자는 제자의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한국행을 택했다.
4월 한국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그는 사업을 동생에게 맡기고 일본 생활을 정리한 후 한국으로 넘어왔다.
4월 14일, 진천선수촌에서 선수들과 처음 만난 이 감독은 깜짝 놀랐다.
그는 "선수들이 수구를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며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이후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몸 관리가 안 돼 있었다"고 했다.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선수들은 이 감독의 지휘 아래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상 처음으로 출전한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역사적인 1승을 수확했다.
이인창 감독은 한국 수구의 발전 가능성을 믿는다. 일본 수구가 커가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수구도 2001년 후쿠오카 세계선수권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처음 세계무대를 밟았고 남자는 최하위, 여자는 뒤에서 2등에 그쳤다"며 "현재 한국의 상황과 거의 똑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일본은 꾸준한 투자를 통해 남·여 모두 아시아 정상을 다툴 만한 수구 강국으로 성장했다"며 "대학교부터 초등학교까지 클럽팀을 모두 합치면 1천팀이 넘는다"고 전했다.
이인창 감독의 의지는 분명하다.
그는 "앞으로 내 힘이 닿는 한, 한국 수구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며 "지도자들을 키우고 여자 수구도 활성화해서 내가 없어도 우리 수구가 없어지지 않도록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traum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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