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앞둔 자녀 서류상 독립시켜 빈곤층 학생 지원 가로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미국의 부유층 일부가 대입을 앞둔 자녀의 후견권을 제3자에게 넘기는 수법으로 빈곤 가정 학생을 위한 장학금과 재정보조금을 가로채는 행태를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리노이주(州)의 대학 상당수는 이런 문제와 관련해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예컨대 시카고 지역에 사는 한 여성은 몇 년 전 당시 17살이었던 딸의 후견권을 동업자에게 이전했다.
후견권 이전은 동업자가 변호사를 대동해 법원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처리됐으며, 어머니와 딸은 얼굴을 비출 필요조차 없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한 셈이 된 딸의 소득은 여름철 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인 4천200 달러(약 500만원)가 전부인 것으로 장학금 신청서에 기재됐다. 이들 가족의 실제 소득은 연간 25만 달러(약 3억원)가 넘는다.
이 여성의 딸은 한 해 등록금이 6만5천 달러(약 7천700만원)인 미국 서부 해안 지역 사립대에 진학했으며, 매년 4만7천 달러(약 5천500만원) 상당의 장학금과 재정 보조(need-based financial aid)를 받고 있다.
작년에는 시카고 교외에 사는 한 10대가 일리노이대에 제출한 입학신청서와 재정 보조 신청서에 부유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내용과, 이미 독립해 혼자 생활 중이란 내용이 각각 적힌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조사에 착수한 일리노이대는 후견권이 타인에게 이전된 상태에서 입학한 학생 15명을 찾아냈다.
앤드루 보르스트 일리노이대 학부 입학 담당 국장은 "재정 보조 요건을 맞추려고 부유한 부모가 자녀의 후견권을 타인에게 넘기는 건 중간·저소득 학생이 받을 지원을 빼앗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른바 '오퍼튜니티 호딩'(기회 독식·opportunity hoarding)으로 불리는 이런 행태가 법적으론 허용되지만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다"면서 후견권이 이전된 학생들에 대한 재정지원이 당분간 중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리노이주 일대에선 연간 최대 4만 달러(약 4천700만원)를 절약하게 해주겠다고 홍보하는 대입상담업체들이 다수 영업하고 있다.
업체 측과 고객들은 어떤 방식으로 등록금 부담을 줄이는지에 대해 입을 닫고 있지만, 현지에선 이들이 후견권을 제3자에게 넘겨 저소득층 자녀인 양 위장하는 수법을 개발해 퍼뜨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WSJ는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교육부도 일리노이대의 제보를 받아 조사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전미학비보조관리자협회(NASFAA)의 저스틴 드래거 최고경영자 겸 회장은 "이들은 시스템을 갖고 놀고 있다. 합법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는 매우 불미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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