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법 반대 시위 개시 후 첫 사례…최고 10년 징역형 가능
16살 여학생까지 기소…경찰 "시위대 겨눈 총은 '빈백건' 해명"
염정공서, 위안랑 '백색테러' 당시 경찰 직무유기 여부 조사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 경찰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참가자 44명을 폭동 혐의로 무더기 기소하기로 함에 따라 본격적인 강경 대응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명보 등에 따르면 전날 홍콩 경찰은 지난 28일 도심 시위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던 시위 참가자 49명 중 44명을 폭동 혐의로 기소한다고 밝혔다.
다른 시위 참가자 1명은 공격용 무기를 소지한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다.
폭동죄 혐의로 기소된 시위 참가자들은 남성 28명과 여성 16명으로, 학생이 13명이나 된다. 심지어 16살 여학생도 기소됐다.
41살 여성이 최고령으로, 캐세이퍼시픽 항공사 조종사, 교사, 요리사, 간호사, 전기 기술자, 건설노동자 등도 포함됐다.
지난 28일 송환법 반대 시위대는 경찰이 불허한 도심 행진을 강행하다가 경찰과 충돌했고,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한 경찰에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폭동죄 적용 소식에 분노한 수백 명의 홍콩 시민은 전날 밤 체포된 시위 참가자를 구금 중인 콰이청 경찰서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또다시 경찰과 충돌했다. 항의 시위는 틴수이와이 경찰서 앞에서도 벌어졌다.
콰이청 경찰서 앞에서는 한 경찰이 산탄총처럼 보이는 총을 들고 나타나 아무런 경고도 없이 시위대를 조준하는 일도 벌어졌다.
홍콩 경찰은 이 총이 살상력은 낮지만, 알갱이가 든 주머니 탄으로 타박상을 입힐 수 있는 '빈백건(bean bag gun)'이라고 해명했다.
홍콩 경찰, 시위대 44명 '폭동죄' 기소…시위대에 총까지 겨눠 / 연합뉴스 (Yonhapnews)
틴수이와이 경찰서 앞에서는 차를 타고 지나가던 정체불명의 사람이 시위대에 폭죽을 던져 6명이 다치는 일도 발생했다.
홍콩기자협회는 경찰이 시위 현장을 취재하는 빈과일보 기자의 머리를 방패로 구타했다며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폭동죄 적용 대상 시위 참가자들이 출두한 홍콩 동부법원 앞에서는 수백 명의 홍콩 시민들이 '폭동은 없다. 폭정만 있다'는 팻말 등을 들고 항의했다.
홍콩 경찰이 기소 방침인 44명은 법원 심리를 거쳐 대부분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야간 통행금지, 주 1회 경찰 출두, 출경 금지 등의 조건으로 보석이 허가됐다. 캐세이퍼시픽 조종사에게는 특별히 출경이 허락됐다.
지난달 초부터 시작된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200여 명에 달한다고 SCMP는 전했다.
경찰이 송환법 반대 시위 참가자에 폭동 혐의를 물어 대거 기소하면서 이제 중국 중앙정부가 천명했던 '강경 대응'이 본격화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9일 홍콩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은 1997년 홍콩 반환 후 처음으로 홍콩 내정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하면서 홍콩 정부와 경찰에 시위대의 폭력 행위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달 초부터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그동안 수차례 경찰과 시위대의 극렬한 충돌이 있었지만, 시위 참가자에게 폭동죄 혐의를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에서는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반중국'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강경책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1일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 건물 앞까지 가 중국 국가 휘장에 검은 페인트를 뿌리고 날계란을 던지는 등 강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이번에 폭동죄 혐의가 적용된 시위 참가자들도 28일 중련판 인근까지 진출하려고 하다가 경찰과 극렬한 충돌을 빚었다.
시위 참가자에 폭동 혐의가 무더기로 적용된 것은 지난 2016년 몽콕(旺角) 사태 이후 처음이다.
2016년 춘제(春節·중국의 설)인 2월 8일 밤 몽콕에서 노점상 단속을 반대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100여 명이 부상하고 54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더구나 이번에 폭동 혐의가 적용된 시위 참가자 수는 44명에 달해 몽콕 사태 당시 경찰이 폭동 혐의로 기소한 36명보다 더 많다고 명보는 전했다.
폭동 혐의가 적용될 경우 최고 10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파문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홍콩고등법원은 몽콕 시위에 참여했던 에드워드 렁(梁天琦) 본토민주전선(本土民主前線) 전 대변인에게 폭동 혐의를 적용해 징역 6년 형을 선고했고, 같은 혐의로 활동가 로킨만(盧建民)에게는 징역 7년 형을 선고했다.
6∼7년 징역형은 홍콩 사법사상 폭동 혐의를 인정해 내려진 판결 중 가장 가혹한 판결이었다.
홍콩 독립을 주장하던 이들에게 장기 징역형이 내려지자 홍콩 야당은 "이번 판결은 정치적 동기가 작용한 판결로, 2014년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 후 저항을 계속하던 활동가들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송환법 시위 참가자에 대한 무더기 폭동죄 적용이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 거센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캐리 람 장관은 지난달 12일 홍콩 시위대가 입법회 인근에서 경찰과 충돌한 직후 이를 "노골적으로 조직된 폭동의 선동"이라고 맹비난했다가 시민들의 분노를 불렀고, 이는 16일 20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로 표출됐다.
더구나 홍콩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지난 21일 '백색테러' 사건 혐의자들에게도 폭동죄가 적용되지 않은 것과 대조돼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1일 밤 홍콩 위안랑(元朗) 전철역에는 흰옷을 입은 100여 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들이닥쳐 쇠막대기와 각목 등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 참여자와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이로 인해 최소 45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편, 홍콩 반부패 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가 전담팀을 구성해 21일 밤 백색테러에서 경찰의 직무유기 혐의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SCMP는 전했다.
홍콩경찰-'백색테러' 용의자 대화 영상 공개…경찰 곤혹 / 연합뉴스 (Yonhapnews)
21일 밤 백색테러 사건 발생 당시 홍콩 경찰은 신고를 받은 후 35분이나 지나서야 늑장 출동한 데다, 경찰 지휘관이 백색테러 가담자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까지 유포돼 '경찰-폭력배 유착설'이 제기됐다.
홍콩 경찰이 체포한 백색테러 용의자 중에는 홍콩 폭력조직 삼합회(三合會) 일파인 '워싱워(和勝和)', '14K' 등의 조직원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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