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긴축 마침표 찍고 10년여만에 금리인하…양적긴축 2개월 당겨 종료
파월 '보험성 금리인하' 강조…주요국 중앙銀 통화완화 힘받을 듯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1일(현지시간) 10년 7개월 만에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장의 예상대로 0.25%포인트 하향조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사실상 '0.5%포인트 빅컷'을 요구했지만 0.25%포인트씩 금리를 조정하는 일명 '그린스펀의 베이비스텝' 원칙을 따랐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12월 이후로는 처음이다. 2015년 12월 시동을 걸었던 통화 긴축에 마침표를 찍고 '돈풀기'로 되돌아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통화완화 사이클로 기조적으로 돌아섰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추가적인 인하의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명확한 시그널을 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을 '중간사이클 조정'(mid-cycle adjustment)으로 규정했다. 중기적인 조정으로, 장기적인 통화정책까지 예단하지는 말라는 의미인 셈이다.
미국 연준, 10년 7개월 만에 기준금리 0.25% 포인트 인하 / 연합뉴스 (Yonhapnews)
◇ 美 최장기 호황인데…파월 "보험적 측면"
통상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경기부양 카드다. 연준이 금융위기 당시 기준금리를 0.00~0.25%로 인하하면서 '제로 금리'로 떨어뜨린 게 대표적이다.
최장기 호황을 이어가는 현재 상황은 사뭇 다르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 달로 121개월째 경기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기존 120개월(1991년 3월~2001년 3월)을 넘어서는 역대 최장 기록이다.
분기 성장률이 1분기 3%대에서 2분기 2%대로 낮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국 경제는 탄탄하다. 실업률은 반세기만의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뉴욕증시는 잇따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지표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금리인상을 뒷받침하는 여건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가운데 2명이 '동결'을 요구하면서 금리인하에 반대표를 던진 것도 이러한 딜레마를 반영한다.
연준이 꺼내든 명분은 이른바 '보험성 인하'(Insurance Cut)다. 글로벌 무역갈등과 맞물려 유로존과 중국을 중심으로 경기둔화가 본격화하는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연계성이 한층 강화되면서 미국이 '나홀로' 정책을 펴기는 어려워진 현실을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도 지난 28일 금리 인하를 지지하면서 "미국은 섬이 아니라 세계 경제의 일부"라고 언급했다.
파월 의장도 기자회견에서 글로벌 성장과 무역의 불확실성을 거론하면서 "명확히 보험적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역설적으로, 기준금리가 2%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경기침체가 닥쳤을 때, 인하 여력이 적은 만큼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려서라도 침체를 막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미다.
그밖에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 2%를 지속해서 밑돌고 있는 데다, 금융시장의 인하 기대감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 美 통화정책 변곡점…각국 중앙銀 통화완화 뒷받침
금리인하의 배경을 제쳐두더라도, 미국 통화정책이 변곡점을 맞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무엇보다 금융위기 직후로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을 흡수하는 '통화긴축 사이클'이 3년여만에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연준은 2015년 12월 '제로 금리 종료'를 선언하고 금리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긴축기조로 돌아섰다. 이어 2016년 1차례, 2017년 3차례, 지난해에는 4차례 각각 금리를 올렸다.
모두 0.25%포인트씩 9차례 금리를 올리면서 기준금리를 2.25~2.5%까지 끌어올렸다. 연준은 미·중 무역갈등의 불확실성이 부각된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유보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연준은 이번 금리 인하를 통해 3년 7개월 이어진 긴축정책에 명시적으로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또 다른 '긴축 카드'인 보유자산 축소를 2개월 앞당겨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보유자산 축소란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고 시중의 달러화를 회수하는 '양적 긴축'(QT) 정책이다. 채권을 사들이면서 돈을 풀어 시중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 완화'(QE)의 정반대 개념이다.
앞서 연준은 보유자산 축소 정책을 9월 말에 종료하기로 했다.
예정된 종료 시점을 눈앞에 두고, 굳이 조기 종료를 부각한 것은 '긴축정책을 종료했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는 글로벌 통화완화 행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주요국 중앙은행들로서는 추가적인 돈풀기에 나설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번 달 기준금리를 현행 0%로 유지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놓은 바 있다. 일본은행(BOJ)도 단기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0.1%로 유지하면서 장기 금리(10년물 국채)를 계속 0% 정도로 억제한 상황이다.
◇ 추가 인하 몇차례?…'애매모호' 파월의 메시지
다만 연준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기조적인 전환을 했는지 여부엔 물음표가 남는다.
FOMC 성명에서 향후 금리 결정을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는 데다, 파월 의장도 다소 애매모호한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장기적인 연쇄 금리 인하의 시작이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으면서도 "나는 그것(금리인상)이 단지 한 번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추가로 금리를 내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파월 의장이 언급한 "중간사이클 조정"이라는 두 단어에 미국 언론들은 주목했다. 추세적인 인하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 한두차례 인하는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연준이 1990년대와 유사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당시 연준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소폭 금리를 인하했다"고 설명했다.
연준은 1995년과 1998년에도 보험성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당시 연준은 0.25%포인트씩 3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경기하강을 피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사례에 비춰보면 1~2차례 추가인하가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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