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당국자 "'눈에는 눈' 우려"…"美 많은 우려 속 '할 일 다 하겠다'"
美, 추가 사태악화 방지 주력 관측…트럼프 전면에 나설지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일본이 2일 각의에서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 처리를 끝내 강행함에 따라 미국 측은 우려 속에 상황을 주시하는 분위기이다.
협상 기간 분쟁을 일단 멈추는 일종의 휴전 제안인 '현상동결 합의'(standstill agreement) 합의를 양측에 촉구하며 사태 악화 방지를 위해 움직였지만, 일본의 '도발'로 인해 '중재'가 일단 무위로 돌아간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이 미국측 등의 만류에도 불구, 제2차 경제보복을 감행하고 한국도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의 연장 거부 검토 입장을 시사하는 등 한일 관계는 강 대 강 대치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강경화 vs 고노, '미국 역할론 발언' 여부 놓고도 다른 말 / 연합뉴스 (Yonhapnews)
앞서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 등에 따르면 미국의 중재안은 일본에 수출규제 강화 '제2탄'을 진행하지 말 것을, 그리고 한국에는 압류한 일본기업의 자산을 매각하지 않을 것을 각각 촉구하는 내용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며 중재안을 묵살한 셈이 됐다.
일본의 제2차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 관계가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미국이 향후 사태 해결을 위해 어떠한 중재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이날 오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FR) 외교장관회의가 열리고 있는 태국 방콕에서는 강경화 외교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 3자간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개최됐다.
이미 '상황'이 종료된 이후 한미일 외교장관이 테이블에 모인 자리여서 당장 극적 돌파구가 마련되지는 못한 채 회담은 30분만에 끝났다. 폼페이오 장관도 회동 후 '일본의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나는 등 말을 아꼈다.
그러나 "미국도 이 상황에 대해서 큰 우려를 갖고 있고 앞으로 어렵지만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할 역할을 다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강 장관이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 자리에서 향후 사태 수습을 위한 중재 방안을 구체적으로 다시 꺼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할 역할을 다하겠다"며 역할론을 자임했다는 얘기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의 관계는 강하며, 북한의 비핵화에 중요할 것"이라며 대북 대응 등을 위한 한미일 공조를 강조했다.
미국은 한동안 한일 갈등과 관련, '어느 한쪽 편의 손을 들어주긴 어렵다'며 일차적으로 당사자 간 해결에 무게를 둬왔으나, '백색국가 제외' 개정안 처리 예정일이 임박해오자 확전을 차단하기 위한 중재 카드를 내놓으며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미국이 현상동결 합의를 제안했으나 일본이 즉각 거부 입장을 밝혔다는 사실을 이날 공개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강행으로 한일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 상황에서 확전을 막기 위한 미국 측의 '중재 2라운드'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언급대로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한미일간 균열이 빚어져선 안된다는 게 미국의 인식이다.
일본의 '도발' 강행에 '브레이크'를 거는 데 실패한 미국으로선 일단 한일 양국에 '현상동결 합의'를 계속 요청하면서 추가적인 사태 악화 방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날 한미일 외교수장 3자 회담 테이블에서 상황관리 및 수습을 위한 시도들이 이뤄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 강행에 대한 '상응조치로 한국은 오는 24일까지 연장 여부가 결정돼야 하는 지소미아 연장 재검토를 시사한 상황이다. 김 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 결여와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해,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일본의 백색 국가 제외 강행을 몇 시간 앞둔 1일(현지시간) 취재진에 한 언급이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익명을 요청한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한일 무역 관계의 악화는 '눈에는 눈'으로 이어질 경우 양국의 경제와 그 이상에 부정적 여파를 가져올 수 있다"며 현상동결 합의를 재차 촉구했다.
이와 맞물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등 안보 공조에 대한 우려에 따라 지소미아 유지를 한국 정부에 주문하며 맞대응 자제를 요청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울러 당초 중재안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기업의 압류자산 매각 중단'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에 계속 요청할 공산이 있어 보인다.
미국 측이 향후 한일 갈등 중재를 위해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움직일지는 사태의 파장에 달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일이 갈등을 완화할 방법을 스스로 찾을 것으로 매우 기대하고 있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1일 언급대로 기본적으로는 한 일이 봉합에 나서길 바라고 있지만, 미국 기업들의 피해 등이 확산한다면 미측의 움직임이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등으로 한미일 안보 공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일 간 갈등이 안보 균열로 이어지는 상황이 생길 경우 이 역시 미국의 보폭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지도 관심을 모은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이번 2차 경제보복에 대해 언급을 내놓을지에 시선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기자들과 만나 한일 양쪽에서 요청이 있으면 한일 갈등과 관련해 "관여할 것"이라며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면 나는 거기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미국이 역할론을 적극 자임하고 나서더라도 미국의 중재 시도가 실제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지는 불투명해, 향후 미국의 행보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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