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응조치'로 맞대응…포괄허가 대상인 '가지역'서 日 삭제키로
반도체 대일수출 통제 가능성 배제 못해…내주초 적용품목 대상 발표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 맞대응을 자제해왔던 한국 정부가 드디어 상응조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이 지난 한 달간 한국이 기울인 외교적 노력을 무시하고 2일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하자 한국 정부도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일본이 지난달 4일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을 때만 해도 일본을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강대강으로 맞설 경우 자칫 양쪽 모두 양보 없이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을 흐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보다는 꾸준한 설득과 대화 노력을 통해 일본과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아랑곳없이 한국에 대한 2차 경제보복을 감행했고, 더는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국도 똑같이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해 수출 관리를 강화하는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조치가 이뤄진 직후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이기적 민폐행위", "인류 보편적 가치 위반" 등 전례 없이 강경한 표현을 동원해 비판하면서 "단호하게 상응조치를 하겠다"고 천명했다.
홍 부총리는 "맞대응이 반복되는 건 두 나라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견지해왔지만, 일본 조치에 따라 한국 정부도 이와 관련한 조치를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전략물자수출입고시를 통해 전략물자 지역을 '가' 지역과 '나' 지역으로 구분한다.
백색국가에 해당하는 가 지역은 사용자포괄수출허가를 받을 수 있는 국가를 말한다.
한국의 백색국가는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29개국이 있다.
바세나르체제(WA), 핵공급국그룹(NSG), 오스트레일리아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 4개 국제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나라가 대상이다.
사용자포괄수출허가를 받으면 일정 기간 무기를 제외한 전략물자의 수출 여부, 수출 수량을 수출자가 최종사용자의 사용 용도를 고려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빠지면 한국산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수출허가기관의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취한 조치를 똑같이 돌려주는 셈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가 지역과 나 지역 외 일본을 포함하는 '다' 지역을 신설해 별도로 적용할 규정을 만들기로 했다.
앞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백색국가 제외 결정을 내린 뒤 백색국가와 그 외 국가를 4개 카테고리로 나누어 기존 백색국가는 '그룹A', 나머지 국가군은 그룹 B, C, D로 잘게 쪼개 관리하기로 한 바 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일본은 현재 가 지역에 있지만, 다 지역을 신설해 다른 절차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에 4번째로 큰 수입국이다. 일본 전체 수입액에서 대한국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4.1%다.
한국 전체 수입액에서 대일 수입액이 차지하는 비율 9.6%보다는 작지만, 대한국 수입 비중이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규제한다면 일본 산업에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수입상품 순위를 보면 석유, 가스, 석탄 등 자원이 1∼3위를 차지하고, 휴대전화 및 무선기기, 전자기기, 자동데이터처리기기, 약제, 일용품, 자동차 등이 뒤를 잇는다.
한국도 전략물자 전체를 규제하기보다는 일본의 주요 수입 품목을 골라 공략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기업의 수요가 적지 않은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 포함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한국 기업에 역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성 장관은 "일본을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 위한 절차와 방안은 현재 검토 중이다"라며 "당장 적용 대상 품목과 업종을 말하기는 어렵고 다음 주 초 이와 관련한 종합적인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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