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정책 펴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고가 식재료 구입 의혹에 반박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저 '초리소' 안 먹습니다. 아 물론 초리소는 매우 훌륭한 음식입니다. 그렇지만 할파 지역의 '부티파라'가 더 제 취향입니다. '모롱가 아술'도 안 좋아합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일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초리소'(chorizo)와 '부티파라'(butifarra)는 모두 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의 일종이고, '모롱가 아술'(moronga azul)은 순대와 비슷한 음식이다.
멕시코시티 대통령궁에서 열린 '진지한' 대통령 기자회견 자리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자신의 음식 취향을 구구절절 밝힌 까닭은 무엇일까.
참석한 기자들의 실소를 자아낸 대통령의 이 발언은 최근 온라인에서 불거진 이른바 '롱가니사 게이트'에 대한 언급이었다. '롱가니사'(longaniza) 역시 초리소와 비슷한 소시지다.
발단은 멕시코 제1야당 국민행동당(PAN)의 훌렌 레멘테리아 상원의원이 5일 공개한 '2019년 연간 대통령실 구매·임차·서비스 프로그램'이라는 제목의 문서였다.
문서에는 여러 품목과 가격이 적혀 있는데 그 중엔 최고급 롱가니사 1㎏에 1만6천890페소(약 105만원), 칠면조 햄 1㎏에 3천13페소(약 19만원), 음료수 한 캔에 336.30페소(약 2만원) 등의 항목이 있었다.
레멘테리아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문서를 캡처해 올리고 "이 정도 식품 저장고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한테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서가 공개되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작지 않은 논란이 불거졌다.
89년간 이어진 보수 우파 집권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취임한 중도 좌파 성향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소박하고 투명한 정부'를 표방하며 긴축 정책을 폈다.
자신의 월급을 삭감하고 전용기를 매각하기로 했다. 공공지출도 대폭 줄였다.
새 정부의 긴축정책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고급 식재료를 구입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반대파들은 곧바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트위터 상에 '롱가니사 게이트'라는 해시태그를 단 합성 이미지 등도 올라왔다.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실에서는 이 문서가 실제 대통령실 구매 목록이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 만든 지출 예산 문서로, 참고 자료로만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취임 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7시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6일 회견에서도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어제 보니 대통령실에서 얼마짜린지도 모를 초리소를 살 거라는 얘기가 나오더라"고 말문을 연 후 자신의 '소시지 취향'을 설명했다.
대통령은 "정중히 부탁드리는데 우리를 (이전 정부와) 비교하지 말아달라. 우리는 같은 잣대로 재려고들 한다"고 말했다.
이어 7일 오전 회견에서는 근거 없이 정부를 공격하는 행태를 맹비난하며 '롱가니사 게이트'와 관련해 칼럼니스트 등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처음 제기한 레멘테리아 의원은 "현실과 동떨어진 고가의 예산을 담은 문서가 어떻게 정부 웹사이트에 올라오게 됐는지" 대통령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