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니치 "양국관계 새로운 가능성 보여…세대 간 인식차 뚜렷"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한국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강화하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지만 양국의 정치적 갈등과는 무관하게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전례 없는 한류붐이 일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번 취재를 하면서 양국 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중순 마이니치신문의 구사카베 모토미(日下部元美) 기자는 도쿄 신오쿠보에 있는 코리아타운을 찾았다.
구사카베 기자는 중고생과 20대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 평일 오후였지만 마치 관광지 같았다고 코리아타운의 번잡한 분위기를 전했다.
사이타마(埼玉)현에서 온 중학 2년생 모에카(14) 양은 구사카베 기자에게 "내 주변에는 한국 화장품과 아이돌 붐이 일고 있다"며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스타일 핫도그(치즈독)를 손에 든 채 취재에 응했다.
모에카 양은 한국의 이미지에 대해 "세련되고 유행의 최첨단을 달린다"며 "(한국) 패션은 귀엽고 따라하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모에카 양은 한글도 조금 읽을 줄 안다면서 한국의 아이돌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싶어 혼자 공부했다고 귀띔했다.
이 기사에는 젊은 층 성향을 조사하는 'TT 종합연구소'가 무료통신 앱인 '라인'으로 동일본과 서일본 지역 여고생 246명을 설문한 결과도 소개돼 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이들 여고생 사이에서 유행 순위 2위에 오른 것이 한국에서 생겨난 '치즈독'이었다.
선호하는 명소를 묻는 말에는 동쪽에선 코리아타운이 있는 신오쿠보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하라주쿠와 디즈니랜드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고, 서쪽 지역에선 '한국' 자체가 3위에 랭크됐다.
구사카베 기자는 일본에서 일고 있는 한류 붐의 3개 축이 K-POP, 화장품,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K-POP을 대표하는 방탄소년단(BTS)이 지난달 3일 일본에서 내놓은 10번째 싱글 앨범 '라이츠/보이 위드 러브'(Lights/Boy With Luv)는 발매 첫 주에 62만1천장이나 팔려나가면서 주간 합산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신오쿠보에서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우치다 마사히로 대표는 "수강생의 90%는 여성으로 주부와 회사원 중심"이라며 "예전에는 한국드라마를 보고 배우러 오는 학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오로지 (아이돌) 노래가 한국어를 배우는 동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젊은 여성 사이에서 한국 화장품의 인기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일본 재무성 무역통계에 따르면 2008년 118억엔 수준이던 한국 화장품류 수입액은 2018년 365억엔으로 10년 새 3배 규모로 늘었다.
마이니치는 2003년 무렵 드라마 '겨울연가'로 촉발된 제1차 한류 붐과 2010년 전후 소녀시대와 동방신기 등 한국 아이돌그룹의 일본 진출로 시작된 제2차 한류 붐에 이은 이번 3차 한류 붐의 특징으로 아이돌, 패션, 음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는 점을 꼽았다.
마케팅 업체 '토렌다즈'의 소셜트렌드 뉴스편집부에서 일하는 오쿠무라 지히로 씨는 K-POP이 좋아 한국 화장품을 선택하는 경향도 있지만 사진 공유 앱 '인스타그램'이나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며 유행에 민감한 아이들이 최신 트렌드를 좇기 위해 한국 화장품이나 패션에 관심을 돌리고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회사가 10~30대 여성 1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이 최신 트렌드의 발상지인지를 묻는 말에 10대 응답자의 90%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구사카베 기자는 이번 취재를 통해 한국 물건이나 문화가 일회성이 아니라 일본인의 일상생활에 침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고 썼다.
한편 마이니치는 별도 꼭지의 기사에서 일본인들의 한국 선호에 대한 세대 차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10월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응답률은 60~69세가 31.3%, 70세 이상은 28.1%에 그쳤으나 18~29세는 57.4%에 달해 세대 간 인식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마이니치신문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한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이돌 상품을 사달라"고 하면 "한국 아이돌이잖아"라고 싫은 표정을 짓는다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제관계사 전문가인 권용석 히토쓰바시대학 준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문화는 최후의 보루"라며 "문화 교류까지 냉각된다면 정말로 한일 관계는 위기 상황을 맞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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