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오페라계의 슈퍼스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78)가 그동안 동료 오페라 가수 등을 상대로 부적절한 성적 행동을 저질렀다는 비난이 제기되면서 존경받는 살아있는 전설에서 불명예 음악인으로 전락할 위험을 맞고 있다.
아울러 품위 있고 세련된 클래식 음악계의 이면에 다른 사회 분야와 마찬가지로 '갑질'이 존재하고 갑질이 성적 추행이라는 형태로 음악계 종사자나 학생 등 약자를 괴롭히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 추문 스캔들로 촉발된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인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파문이 클래식 음악계로 번지면서 2017년 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이끌던 '거장' 제임스 레바인이 축출됐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부임하기 한참 전 제자들을 성추행했다는 비난이 제기되면서 오페라 당국은 여론의 비난 속에 그를 해촉했고 미국 오페라의 거장은 하루아침에 성적 비행자로 전락했다.
또 스위스 출신의 지휘자로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를 섭렵하던 샤를 뒤투아도 다수의 여성들로부터 강간을 포함한 성추행이 폭로되면서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다수의 주요 국제적 오케스트라로부터 물러났다.
그러나 오페라를 떠난 레바인과 달리 뒤투아는 여전히 지휘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2018년 10월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내한하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가 프랑스 오페라 지휘에 필요하다면서 뒤투아를 지휘자로 기용할 것이라고 밝혀 음악계의 비난을 사고 있다.
레바인-뒤투아 파문 당시 영국 음악인협회(ISM)와 BBC 라디오가 공동조사한 바에 따르면 클래식 음악계 종사자 60%가 클래식 음악계에 '고도의 성차별'이 존재하며 차별의 주요 형태는 성추행이라고 답변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1월 이후 6개월간 50여명의 음악인이 성적 추행에서 성폭행에 이르는 각종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페라 가수가 의상실에서 폭행을 당할 뻔했으며, 주요 발생 장소는 오케스트라와 합주단이고 학교와 음악원 등에도 성적 괴롭힘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명문 교향악단인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윌리엄 프레우실 악장이 여성 단원들의 성추행 폭로로 물러났으며 재직 중인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직도 그만뒀다.
유명 플루트 연주자인 브래들리 가너도 학생들에게 원치 않는 접근을 시도한 협의로 신시내티 음악원 교수직에서 물러났으며 탬파 오페라 지휘자 대니얼 립튼도 지난 2017년 여성으로부터 성적 추행 제소를 당한 후 현직에서 물러났다.
클래식 음악계 무대는 현실의 삶보다 넓지만 실제 준비작업 환경은 사회 대부분의 다른 직종에 비해 훨씬 좁은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의상실, 리허설 스튜디오, 또는 창문 없는 연습실 등에서 1대1 교습을 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사회 관습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예외적인 관념이 유명 음악가들의 도덕 일탈에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레바인-뒤투아 스캔들이 발생했을 당시 클래식 음악계의 추한 이면을 파헤친 영국의 언론인 블레어 틴돌은 "전혀 놀랍지 않다"면서 음악계에 성추행이 만연해 있으며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들을 종종 도덕적 잘못을 초월하는 '천재'로 간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보에 연주자 출신의 틴돌은 '정글의 모차르트 : 섹스와 마약과 클래식 음악'이라는 저서로 클래식 음악계의 이면을 파헤쳤으며 아마존 TV의 인기 시리즈로 방영되기도 했다.
도밍고에 대한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면서 세계 주요 공연단체들이 도밍고의 출연 계약을 취소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오페라는 예정대로 그를 출연시키기로 하는 등 대응이 엇갈리고 있다. '미투'의 여파가 한물간 탓일까?
지난 1997~2011년간 도밍고가 예술감독을 지낸 미국 최대 오페라인 워싱턴국립오페라도 아직 도밍고를 어떻게 '처리'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또 베로나에서 열린 도밍고 50주년 기념 갈라 영화가 예정대로 오는 9월 7일 미국 내 500개 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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