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3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인 사업가 지모(당시 53세) 씨를 납치·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현지 경찰 간부의 보석을 허가한 판사에 대해 필리핀 법무부가 잇따라 기피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재판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다.
14일 GMA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씨 사건 담당 검사는 최근 필리핀 중부 앙헬레스 지방법원의 부안 판사에 대한 제2차 기피 신청서를 제출했다.
담당 검사는 "이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필리핀 법무부는 부안 판사가 지난 5월 초 검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씨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 가운데 직급이 가장 높은 둠라오 경찰청 마약단속팀장(경정)의 보석을 허가하자 같은 달 23일 부안 판사에 대한 기피 신청서를 제출했었다.
그러나 부안 판사가 애초 첫 재판 일정으로 잡았던 지난 7월 31일에서야 기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다시 기피 신청을 한 것이다.
법무부는 "이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이 '둠라오 팀장이 범행을 부추겼다'고 진술했는데도 부안 판사가 보석을 허가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기피 신청에 대한 결정을 미뤘다"면서 "이는 '지체 없이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사법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또 "이는 부안 판사가 둠라오 팀장에게 편향됐다는 것을 보여줘 사건을 공정하게 심리할 것이라는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에서 인력송출업을 하던 지씨는 2016년 10월 18일 앙헬레스 자택 근처에서 납치돼 마닐라의 경찰청 본부로 끌려간 뒤 살해됐다. 시신은 전직 경찰관이 운영하는 화장장에서 화장됐다.
납치범들은 범행 2주일가량 후에 몸값으로 500만 페소(약 1억2천만원)를 받아 챙기기도 한 사실이 2017년 1월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그러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직접 지씨 부인을 만나 사과하고 엄벌을 약속했었다.
이후 현지 검찰은 주범인 이사벨 경사와 그가 배후로 지목한 상관인 비예가스 경사, 둠라오 팀장 등 4명을 구속기소하고, 화장장을 운영하는 전직 경찰관을 방조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하지만 비예가스 경사가 공범의 범행을 증언해주는 대가로 처벌을 면하는 '국가 증인'으로 지정돼 올해 2월 석방됐고, 둠라오 팀장도 보석으로 풀려난 뒤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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