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 트윗' 직후 불허 결정…"애초 허용 방침에서 번복"
트럼프가 인종차별 공격해온 4인방 중 2명…美정가·당사자 반발
2017년 외국인 입국 금지법 제정 이래 美의원 첫 적용
(카이로·워싱턴·서울=연합뉴스) 노재현 백나리 특파원 현윤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표적 삼아 집중적으로 공격해온 미 민주당의 무슬림 유색 여성 하원의원 2명의 이스라엘 방문이 거부됐다.
이번 조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입국 불허를 촉구하는 트윗을 올린 직후 발표된 것이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눈치보기성 결정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결정에 당사자는 물론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견지해온 미국 민주당 지도부와 공화당 일각도 반발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15일(현지시간) 미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인 라시다 틀라입과 일한 오마 등 2명의 입국을 불허하기로 했다고 예루살렘포스트 등 이스라엘 언론이 보도했다.
아르예 데리 이스라엘 내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네타냐후 총리 등과 협의해 틀라입 의원과 오마 의원의 이스라엘 방문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이스라엘 보이콧' 활동을 이유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스라엘 의회가 2017년 이스라엘에 대해 경제, 문화, 학문 영역 등에서 보이콧 운동을 하는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한이후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외국인 14명의 입국을 불허했다. 미국 의회 의원들이 입국 금지 대상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법은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하며 이스라엘에 경제적 압력을 가하는 '불매·투자철회·제재'(BDS) 운동 지지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2005년 시작돼 미국과 유럽 등에 확산하고 있는 BDS 운동 지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서안 대부분의 점령을 끝내고,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라고 압박한다. 또한,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대대로 살던 터전에서 내몰린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향을 허용할 것도 촉구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틀라입과 오마는 미국 의회에서 이스라엘 보이콧을 부추기는 주요 운동가들"이라며 두 의원이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운동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을 방문할 예정이던 틀라입 의원과 오마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집중적으로 공격해온 민주당 유색 진보 여성 하원의원 4인방에 포함된다.
틀라입 의원은 가족이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팔레스타인계이고 오마는 소말리아 난민 출신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행보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거침없이 비난해왔다.
이들은 이번 이스라엘 방문 시 기독교와 이슬람 모두에 성지로 여겨지는 템플마운트(성전산) 등 민감한 장소들을 찾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 운동가들을 만나는 등의 일정을 소화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정부의 입국 금지 결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불허 촉구' 트윗 직후에 나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름 휴가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을 통해 "오마 의원과 틀라입 의원의 방문을 허용한다면 엄청난 취약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그들은 이스라엘과 모든 유대인을 증오한다"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은 애초 이스라엘 당국이 이들의 방문을 허용하려 했으나 네타냐후 총리가 이날 내각 및 참모 회의를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 때문에 결정이 바뀐 것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당초 선출된 미국 관리 등을 이스라엘 보이콧 관련 입국 제한에서 제외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여권에 "이 문서의 소지자가 어떤 지체나 방해 없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명시돼 있는 마당에,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 정부의 일원의 외국 입국 불허를 종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이번 결정의 당사자인 오마 의원은 "이스라엘의 조치는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모욕"이라며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처럼 이슬람혐오주의를 지지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어온 미 민주당 지도부 역시 즉각 반발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달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입국 불허는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슬픈 번복이고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이스라엘 정부가 불허 결정을 번복하길 기도한다"고 성명을 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이스라엘의 결정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및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 내 지지를 해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하며 미 정치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 로비 단체인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와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들조차 우려를 표명했다.
AIPAC는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는 운동에 대한 두 의원의 지지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미국 의회의 모든 구성원은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하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플로리다를 지역구로 하는 공화당 소속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두 의원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이스라엘 입국을 불허하는 것은 실수"라며 "입국 금지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이 줄곧 원하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데이비드 프리드먼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는 이번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두 의원의) 입국을 불허한 이스라엘 정부의 결정을 지지하고, 존중한다"며 "이스라엘은 전통적인 무기를 소지한 사람들의 입국을 막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국경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외국 정치인이나 외교관의 입국을 금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2015년에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인권 실태를 조사해 온 마카림 위비소노 유엔 인권 특별조사관의 직무가 이스라엘에 반한다면서 그의 입국을 불허했다.
또한, 지난달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라말라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 회의에 참석하려던 스페인 사회당 소속의 정치인인 포아드 아흐마드 아사디 역시 이스라엘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텔아비브의 벤 구리온 국제공항에서 되돌아갔다.
2017년 말에는 프랑스 정치인과 유럽의회 의원 등 정치인 7명의 입국이 불허되기도 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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