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0년 선고한 원심 대법원서 파기…검찰은 살인 혐의 고수
낙태 전면금지 엘살바도르, 유산·사산 여성에 살인죄 적용하기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10대 때 성폭행을 당해 사산하고도 살인죄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던 엘살바도르 여성이 대법원의 원심 파기 결정으로 다시 법정이 섰다.
에벨린 에르난데스는 15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시우다드델가도 법원에서 다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했다.
에르난데스는 법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늘 말했듯이 내가 무죄라는 사실만 전하고 싶다. 난 그냥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르난데스는 어떠한 경우라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엘살바도르의 엄격한 낙태 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을 증폭시킨 인물이다.
가난한 농촌 가정 출신인 에르난데스는 간호대 1학년 재학 중이던 지난 2015년 성폭행을 당한 후 이듬해 4월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다가 아기를 사산했다. 출산 당시 에르난데스의 나이는 18살이었다.
에르난데스는 곧바로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그의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피를 뒤집어쓴 채 기절한 딸을 발견해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에르난데스는 병원 도착 사흘 후 여자교도소로 옮겨졌다. 태아를 고의로 살해했다는 혐의였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에르난데스는 내내 자신이 임신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성폭행 후유증으로 나타난 간헐적인 출혈을 월경으로 오해했고 심한 복통이 있다고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기는 태변 흡인에 따른 폐렴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2017년 법원은 이같은 부검 결과에도 불구하고 에르난데스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2월 대법원은 그가 고의로 태아를 해치려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심을 파기했고, 에르난데스는 33개월 만에 풀려났다.
다시 열린 재판에서도 검찰은 살인 혐의를 고수하고 있다.
보수 가톨릭국가인 엘살바도르는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산모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를 포함해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1998년 낙태가 불법이 된 이후 유산이나 사산을 경험한 수십 명의 여성이 살인 또는 과실치사 혐의로 최고 40년형의 처벌을 받았다. 대부분 에르난데스처럼 가난한 시골 여성들이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에르난데스처럼 성폭행 피해자이거나 임신 사실을 몰랐던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최근 들어 엘살바도르에서도 낙태에 대한 여론에 변화가 오면서 성폭행 피해자 등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법 개정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날 에르난데스의 재판은 지난 6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치러지는 낙태 관련 재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부켈레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산모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엔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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