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선택' 엡스타인의 수감생활…"자판기 비우며 12시간 면회"

입력 2019-08-18 03:42  

'극단 선택' 엡스타인의 수감생활…"자판기 비우며 12시간 면회"
NYT, 엡스타인 마지막 날 재구성…"사법특혜 어려운 현실에 심적 동요한듯"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미성년 성범죄 혐의로 수감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미국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66)은 더는 '법적 특혜'를 누릴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으면서 극단적 선택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전했다.
앞서 엡스타인 부검을 담당한 뉴욕시 수석 검시관 바버라 샘슨 박사는 성명을 통해 "부검 결과,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엡스타인의 수감생활을 재구성한 NYT 보도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하루 최대 12시간에 걸쳐 사적 면회 공간을 이용했다.
좁고 축축하고 벌레가 들끓는 감방에 머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거액을 들여 여러 변호사에게 장시간 면회하도록 했다.
엡스타인이 머물렀던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교도소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61)을 비롯해 악명높은 수감자들이 많은 곳으로, 시설도 극히 낙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엡스타인은 자주 감방을 떠나, 면회장에서 변호인들과 아무런 대화 없이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장시간 머물면서, 변호인단과 함께 음료·스낵 자판기 2개를 모두 비웠다.
면회가 없는 시간에는, 교도소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다른 수용자들의 매점 계좌에 돈을 입금해주기도 했다.
NYT는 "교도소는 엡스타인의 호화로웠던 외부 생활과는 확연히 달랐다"면서 "마지막 며칠, 수감생활의 고통을 덜어내려는 의지가 점점 시들해졌다"고 묘사했다.
목욕하지 않은 채 머리카락·턱수염도 정돈하지 않았고,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잠을 잤다.



'마지막 하루'인 9일에도 엡스타인은 면회 공간에서 변호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재판부가 엡스타인의 성범죄 혐의 사실을 공개하면서 세간의 이목이 쏠렸던 시점이었다.
변호인들은 평소보다 일찍 면회실에 도착했고, 엡스타인은 늦은 오후까지 몇시간 동안 앉아있었다.
당일 밤, 엡스타인이 머무는 특별 수감동에는 단 2명의 교정직원만 근무 중이었다. 이들은 30분마다 엡스타인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지만, 어느 시점인지 잠이 들면서 3시간가량 엡스타인을 방치했다.
이튿날 새벽 6시30분, 엡스타인은 숨진 채 발견됐다. 침대를 이용해 목을 맨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관들은 엡스타인을 침대에서 끌어내려 심폐소생술(CPR)을 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이후였다.
NYT는 "교도소 직원, 변호인 등 20여명과의 인터뷰를 종합해보면, 엡스타인은 자신의 부(富)와 특권으로 사법 시스템을 조종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엡스타인은 2008년 최소 36명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행위를 강요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했지만, 검사와의 감형 협상(플리바게닝) 끝에 이례적으로 연방 범죄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관할 지검의 검사장이었던 알렉산더 어코스타 전 미국 노동장관은 '봐주기 논란' 끝에 지난달 노동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성범죄 혐의 자체는 물론, 11년 전 '사법 특혜'에 대한 사회적 공분까지 더해지면서 엡스타인을 압박했고,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청구도 기각됐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j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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