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편되는 글로벌 가치사슬…韓 국제분업 의존도 높아 변화취약"

입력 2019-08-19 06:11  

"재편되는 글로벌 가치사슬…韓 국제분업 의존도 높아 변화취약"
정부 내부보고서 "일본서 공급원 바통 넘겨받아 中부품 시장에 공급 역할"
"20년주기 변화…극일 차원 넘어 밸류체인 연동해 소재산업 육성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일본의 수출규제와 미중 분쟁격화에 때맞춰 나온 정부의 통상산업 정책 내부 보고서는 국제적인 분업구조에 기반한 글로벌 가치사슬(GVC) 체계가 흔들리는 위기의 때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세계 통상질서의 변화로 인해 각국의 산업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새로운 통상질서와 글로벌산업지도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철강·자동차 232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중국제품 관세부과 등 통상정책을 통해 북미지역의 산업지도를 바꾸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중국내 외국기업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북미지역에 제조기지를 구축함으로써 미국이 중심이 되는 가치사슬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첨단 제조업 육성 전략 '중국제조 2025'에서 보듯 자국내에 완벽한 자립형 공급망(Supply chain)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배타적 자국 완결형 가치사슬인 이른바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 구축을 통해 핵심부품과 소재의 자급률을 2015년 40%에서 2025년까지 70%로 올릴 계획이다.
일본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에 촘촘한 공급망을 구축해 놓고 있으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통해 GVC를 더욱 강화하려 한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태국을 비롯한 아세안 지역을 자동차 생산기지 거점으로 설정하고 이 지역에 부품기업과 생산시설을 구축해오면서 아세안 자동차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유럽 제조강국인 독일은 산업 4.0(스마트팩토리)정책을 통해 개도국과 생산비용 격차를 줄여나가고, 유럽연합(EU) 지역내에 GVC 허브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2016년 세계무역기구(WTO)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 가운데 GVC를 통해 생산된 비중은 62.1%로 전세계 4위에 올라있다. GVC가 흔들리거나 끊어지면 수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8월 영국 경제분석기관은 미중 무역분쟁으로 GVC가 흔들리게 되면 한국을 포함해 GVC 참여비율이 높은 룩셈부르크, 대만, 슬로바키아의 수출 위험도가 아주 높은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실제로 한국의 수출은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했다
보고서는 대략 20년을 주기로 하는 동북아 국제분업구조의 시대적 역동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980년대는 일본 제조업이 주름잡았으나 한국이 바통을 이어받고 다시 중국이 그 역할을 넘겨받는 동안 일본 부품 산업이 한국 제조업 발전에 했던 공급원 역할을 이제는 우리나라가 중국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소재·부품·장비 발전 전략은 한중일 분업구조를 넘어 전세계 밸류체인의 변화와 연동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일본을 극복하는 차원뿐만 아니라 앞으로 20∼30년 동안 후손들이 먹고살 수 있는 미래 산업정책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GVC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뿐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도 결정된다.
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디자인·마케팅은 자국에 위치한 본사에서, 부가가치가 낮은 조립과 생산은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한 개도국에서 수행하면서 기업활동을 최적화한다.

애플(Apple) 아이폰의 경우 디자인과 마케팅은 미국에서, 부품구매는 한국에서, 그리고 조립과 생산은 중국에서 각각 이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기업활동은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고 한국은 비교적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보호무역주의, 제조업 부활정책, 4차 산업혁명이 확산하면서 개도국에 장점이 있던 '조립·생산' 활동이 선진국으로 이동하고, 원자재·부품의 조달 등 가치활동이 특정 권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소개했다.
산업부 김용래 통상차관보는 "밸류체인 재편은 그 질과 형태가 계속 바뀌고 있으며 한일 분쟁도 그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면서 "일본 수출규제에 대처하는 소재·부품·장비 100대 핵심품목의 국산화 대책 등도 이 같은 밸류체인 분석에 기초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 생산되는 부분은 대부분 파악됐지만 해외 부품조달이나 판매 등은 기업 영업비밀이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해외부문 등 밸류체인 분석을 보강해 국내 소재·부품·장비 대책을 추진하는 한편 해외 기술을 가진 회사를 사들이는 인수·합병(M&A)을 신속히 추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기술 M&A가 빠르게 다양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긴 시간을 요하는 소재·부품·장비 육성 뿐 아니라 4차 산업기술혁명 대응에 필요한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유망기술 확보를 위해서도 가장 적합한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또 국내 기업들이 폐쇄적인 독자적 연구(Inhouse-R&D)를 넘어 다른 나라들과 전략적 기술제휴, 공동개발, 합작투자 등 '개방혁신(open innovation)'을 통해서도 글로벌 혁신역량을 백분 활용하도록 권장했다.
보고서는 "우리 통상정책도 산업정책과 더 연계해야 한다"면서 "통상환경에 따른 글로벌 산업재편 흐름을 정확히 읽고 연구개발(R&D), 생산, 마케팅 활동을 협소한 국내시각에서 벗어나 글로벌 관점에서 획득하고 최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ungj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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