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브렉시트후 '이동자유' 즉각 종료 선언에 EU시민 '패닉'

입력 2019-08-20 11:07  

英 브렉시트후 '이동자유' 즉각 종료 선언에 EU시민 '패닉'
영국 내 EU 시민 260만명 영향받을 듯…정치권 "혼란 방지책 마련해야"
존슨 "이민 적대정책 아니라 민주적으로 통제하려는 것"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영국 정부가 오는 10월 31일로 예정된 유럽연합(EU) 탈퇴와 동시에 영국 내 EU 시민들의 거주 및 직업 활동의 자유를 즉각 종료시키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영국 내 EU 시민들의 불안과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영국 총리실은 19일(현지시간) 현재와 같은 '이동의 자유'가 브렉시트가 개시되는 10월 31일을 기해 곧바로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이 같은 결정은 전 정부인 테리사 메이 내각이 EU 탈퇴 이후에도 2년의 이행기를 두고 현 수준의 이동 자유를 보장한다는 방안을 전격적으로 뒤집는 것이다.
영국 측 발표대로라면 오는 10월 31일 이후 영국에 사는 EU 회원국 국민은 영국 내에서의 신분 변화를 겪으면서, 적지 않은 혼란을 치를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 개시일인 오는 10월 31일 영국 내 EU 시민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EU 시민은 영국 방문 시 EU 역외 국민과 마찬가지로 입국심사를 거쳐야 한다.
총리실에 따르면, 영국에 입국하는 사람들에 대한 범죄전력 조회 등의 절차도 강화될 예정이다.
영국 내무부 담당 BBC의 데니 쇼 기자는 "(여행, 학업, 취업 등으로) EU에서 영국에 들어오는 사람이 매년 4천만 명에 달한다"며 "'이동의 자유'가 즉시 폐지된다면 영국 항만과 공항 직원들은 이들의 심사에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90일 넘게 영국에 머무르거나 취업이나 유학을 하려는 EU 시민도 영국에서 비자를 받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 조치는 현재 영국에 체류 중인 총 360만명의 EU 시민 중, 브렉시트 이후에도 합법적인 영국 거주를 보장하는 '정착 지위'(settled status)를 얻은 100만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현지 일간 가디언은 예상했다.



영국 내 EU 시민은 메이 총리 재임 시절에 영주권에 해당하는 '정착 지위'나 '예비 정착 지위'를 신청하라고 미리 안내를 받은 바 있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현재 영국에서 거주하는 EU 시민은 이 지위를 내년 12월까지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이런 신청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거나, 신청에 필요한 서류 등의 정보가 부족한 까닭에 아직 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자신들이 제공한 정보를 영국 정부가 추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로 신청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년간 영국에서 거주한 포르투갈 출신의 유학생은 가디언에 "영국 내무부는 이민자 취급에 있어 악명높은 전력을 지니고 있다"며 "민감한 개인 정보를 그들에게 넘기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예 기간 없이 '이동의 자유'를 폐지한다는 방침이 발표되자 영국 내 EU 시민들은 크게 술렁이고 있다.
특히, 영주권을 아직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은 브렉시트 이후 국민보건서비스(NHS) 이용과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일각에서는 영주권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해외 여행을 갔다가 재입국할 경우 영국내 거주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도 제기된다.
영국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국적의 그레고리오 베닌카사는 "이제 국경 경비대가 우리의 지위를 입증하기 위해 고용 계약서나 공과금 고지서를 확인할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수당 소속 앨버토 코스타 하원의원은 "브렉시트 이전에 합법적으로 영국에 거주해온 EU 시민의 권리와 브렉시트가 개시된 후 영국에 입국한 사람들의 권리를 어떻게 구별할지에 대해 정부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으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혼란을 방지할 엄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면서, "이런 혼란은 단지 도버 해협으로 가는 길에 트럭이 줄지어 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거주권과 의료권, 연금 수령권 등 기본권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스타 의원은 또 정부가 유예 기간 없이 영국 내 EU 시민의 이동 자유를 종료하는 것은 130만 명에 달하는 EU 내 영국 시민들의 권리에도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영국 내무부는 "영주권 등을 신청하는 데 합당한 자격을 지니고 있으면 재입국이 금지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동의 자유' 종료 후속 조치와 관련해 세부 사항을 다듬고 있으며, 곧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내무부는 또한 "브렉시트 이후에 정부는 출신국이 아니라 기술, 이민자가 영국에 어떤 기여를 할지를 우선순위에 두는 새롭고 공정한 이민 체계를 도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경 브렉시트주의자인 존슨 영국 총리 역시 이번 조치와 관련, "영국이 이민에 적대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민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브렉시트와 동시에 '이동의 자유'가 폐기되더라도 아일랜드 국민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BBC는 이는 지난 5월 영국과 아일랜드가 아일랜드 국경에서의 양국 국민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합의안에 서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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