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케이팝이 北 젊은층에 미치는 영향 조명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과거 동서 냉전 시대 동유럽에 유입된 서구음악은 '철의 장막'에 파열구를 내는 역할을 했다.
소련의 젊은이들은 불법 녹음된 비틀스의 노래를 들었고, 1987년 동베를린의 젊은이들은 서베를린에서 개최된 영국의 록스타 데이비드 보위의 공연을 듣기 위해 베를린 장벽에 모여들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케이팝(K-POP)이 어떻게 북한 젊은이들이 선을 넘도록 유혹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동서 냉전 붕괴에 기여한 서구음악과 유사하게 케이팝이 북한 젊은층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어린 시절 북한 지도자를 찬양하는 곡을 연주하던 류희진 씨는 케이팝의 영향으로 탈북하게 됐다고 WP에 전했다.
그는 "북한 음악은 들으면 감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미국이나 남한 음악을 들으면 말 그대로 오싹해진다"고 말했다.
류씨는 평양에 있을 때 단속 위험 때문에 몰래 침실에서 한 장의 뮤직비디오를 반복해서 듣느라 가끔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항상 미국은 늑대이고, 남한은 꼭두각시라고 배웠다"며 "그러나 그들의 예술을 들었을 때 그들을 인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평양의 예술학교에서 가야금을 연주한 류 씨는 2015년 23세의 나이로 탈북했다.
이광백 국민통일방송(UMG) 대표는 WP에 냉전 시대 서구음악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가요가 북한의 체제 선전을 미묘하게 훼손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통일방송이 탈북민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중 90%는 북한에 있을 때 외국 영화와 음악을 들었다.
북한 주민들은 주로 중국을 통해 유입되는 이동식저장장치(USB) 등을 통해 외국 콘텐츠를 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팝은 멜로디와 기사는 물론 아이돌 스타들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통해서도 북한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탈북민 강나라(22) 씨는 "나는 (북한에 있을 때) 머리를 염색하고 미니스커트와 청바지를 입고 싶었다"면서 "내가 시장에 청바지를 입고 나갔을 때 벗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청바지는 내 눈앞에서 불탔다"고 말했다.
평양의 한 예술고등학교에서 가수로 활동했던 강씨는 2014년에 탈북했다. 그는 이제 "나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탈북민 한송이 씨도 10살이던 2003년 걸그룹 베이비복스의 평양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베이비복스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한편, 류씨는 탈북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의 영화와 TV 드라마 팬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났다고 전했다.
그는 "너무너무 화가 났다"며 "우리는 김정일 삶의 역경에 대해 노래할 때 눈물을 흘렸다. 그가 남한 TV를 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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