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소련에 저항했던 '발트의 길' 시위 본떠
회계사 5천여 명, 1997년 주권반환 후 최초로 시위 동참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수많은 홍콩 시민들이 모여 거대한 인간 띠를 만드는 '홍콩의 길' 시위가 펼쳐졌다.
23일 홍콩 명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송환법 반대 시위대는 이날 밤 '발트의 길' 시위를 본뜬 '홍콩의 길' 시위를 펼쳐 39개 지하철역을 잇는 총 45㎞의 인간 띠를 만들었다.
1989년 8월 23일 총인구가 약 700만 명에 불과한 발트해 연안 3국 주민 중 약 200만 명은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소련에 넘겨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독소불가침조약) 50주년 기념일을 맞아 '발트의 길' 시위를 전개했다.
이들은 전 세계에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기 위해 이 시위에서 사상 최대 기록인 총연장 600㎞의 인간 띠를 만들었다.
송환법 반대 시위대는 이날 저녁 7시부터 홍콩 센트럴, 완차이,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몽콕, 쌈써이포 등에 모여 인간 띠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9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총 45㎞의 인간 띠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홍콩인들 힘내라", "광복홍콩 시대혁명", "5대 요구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각자 손에 든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으로 밤하늘에 밝은 불빛을 한꺼번에 비추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홍콩 아이돌 그룹의 일원인 토미는 "정부는 시위대의 5대 요구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며 "홍콩인들은 이에 굴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회계사 5천여 명(주최 측 추산)은 이날 오후 홍콩 도심인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서 정부청사까지 침묵 행진을 하며 송환법 완전 철폐와 경찰의 강경 진압을 조사할 독립 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1997년 홍콩 주권반환 후 회계사들이 사회 문제에 관한 시위에 동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위를 주도한 케네스 렁은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행위에 대해 경고하거나 심지어 해고 위협을 가하는 일이 요즘 벌어지고 있다"며 "이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자랑스러워하던 홍콩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 내 기업들이 송환법 반대 시위를 비판하는 입장을 표방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으며, 이에 KPMG, 어니스트&영, 딜로이트, PwC 등 홍콩 4대 법인은 송환법 반대 시위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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