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압박에 '관전 허용' 발표해놓고 체포…보석금 받고 석방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여성의 축구 경기장 입장을 금하고 있는 이란에서 남장을 하고 여러 차례 경기를 관전한 여성 4명이 당국에 체포돼 파문이 일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여성의 경기장 출입을 허용하지 않으면 이란 대표팀의 월드컵 출전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 압박하자 이란축구협회가 오는 10월 10일 이란에서 열릴 2022 카타르 월드컵 지역 예선 이란-카타르전에 일반 여성의 입장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번 체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축구경기 관전 등 여성의 권리 확대를 주장하는 보수온건파 로하니 정권과 보수 강경파간의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란 당국은 남장 차림으로 축구 경기장에 여러 번 들어가 관전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회계사 자프라 호슈나바즈(27) 등 여성 4명을 지난 13일 체포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현지 관계자의 말을 빌어 27일 보도했다. 인터넷에 사진을 올린 행위가 "공공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를 든 것으로 전해졌다.
체포된 호슈나바즈는 작년 말 아사히 신문에 "여성의 관전은 법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며 경기장에서의 관전은 당연한 권리"라고 말한 바 있다.
이란 학생통신에 따르면 4명은 18일까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인터넷에서는 "아자디 경기장에 간 여성을 형무소에 보내다니 어처구니 없다" 등의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여성이 축구 등 남성스포츠를 경기장에서 관전할 수 없게 됐다. 관련 법 규정은 없으나 치한과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에서다. 그러나 2017년 말께부터 수염을 붙이고 가슴에 천을 두르는 등 남성으로 위장해 경기장에 입장하는 여성이 잇따라 나오면서 이들의 관전 모습이 SNS에 연달아 올라왔다. 이들은 이란 최대의 경기장 이름을 따 "아자디(자유) 여성들"로 불렸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 정부는 FIFA로부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이 시작되는 9월 이전에 여성의 경기장 입장을 허용할지 여부를 밝히라는 요구를 받아왔다. 여성입장을 허용하지 않으면 월드컵 출전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란 체육부 간부는 25일 "여성의 월드컵 경기 관전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으나 보수강경파 종교지도자들이 완강히 반대하고 있어 10월 테헤란에서 열리는 2차 예선의 여성관전 허용여부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장 차림으로 입장한 여성들을 체포한 것도 보수강경파의 영향력이 강한 사법당국의 온건파 견제라는 관측이 많다.
이란에서 여성의 축구경기장 입장이 아예 허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이란의 경기가 열렸을 때 아자디 스타디움에 여성이 입장,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되는 경기를 보며 단체 응원에 참여했다. 실제 경기를 본 것은 아니지만 축구경기장이라는 공간에 여성이 입장한 것은 1981년 이후 처음이었다.
같은해 10월과 11월에는 이란과 다른 나라의 공식 축구 경기에 선수의 가족, 취재진, 이란 여성 축구·풋살 대표 선수, 이란축구협회 직원 등 제한적이지만 1981년 이후 처음으로 여성의 관람이 허용됐다. 다만 칸막이와 경호 인력으로 여성을 위한 관람석을 남성과 엄격히 분리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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