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운동-민주당 연정 '5부능선'…내각 명단·정책안 협상 지속
부총리 등 핵심 포스트 놓고 기싸움 예상…'낙관 어렵다' 지적도
극우 '반난민' 부총리 살비니, 야당 전락 신세…"잘못된 연정" 비판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의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 간 새로운 연립 정부 구성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29일 오전(이하 현지시간) 집무실인 로마의 퀴리날레 궁에서 주세페 콘테 총리를 면담하고 그에게 차기 내각 구성 권한을 부여했다.
이는 콘테 총리가 이끄는 오성운동-민주당 연정 구성 계획을 사실상 승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가을 총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전망도 뒤따른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정치권과의 1차 연정 협의를 마무리한 뒤인 지난 22일 성명을 통해 신뢰할 만한 연정 구성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으로 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법학자 및 변호사 경력을 가진 콘테 총리는 작년 6월부터 1년 2개월간 극우 정당 동맹과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 간 연정의 조율자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동맹이 연정 붕괴를 선언한 뒤인 지난 20일 사임을 발표했으나, 마타렐라 대통령이 새 연정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기존 내각을 그대로 이끌어달라고 요청해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무소속이지만 정치적 성향이 오성운동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콘테 총리는 마타렐라 대통령과의 면담이 끝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탈리아를 혁신하고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이어 당장 국가 최대 현안인 2020년 예산안을 짜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새 정부의 업무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마타렐라 대통령의 이번 결정으로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는 오성운동과 민주당 간 연정 협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마타렐라 대통령으로부터 내각 구성 권한을 부여받은 콘테 총리는 내각의 장·차관 명단과 핵심 정책안을 마련하고자 30일부터 두 연정 파트너와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합의가 이뤄지면 콘테 총리는 다시 마타렐라 대통령을 찾아 이에 대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어 하원과 상원에서 새 연정에 대해 신임을 묻는 표결이 진행되고, 여기서 가결되면 공식적으로 새 연정이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절차가 큰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이르면 내달 초·중순에는 새로운 연정이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 연정은 규정상 다음 총선이 예정된 2023년까지 내각을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의회 내 오랜 앙숙인 양당이 2020년 예산안을 비롯한 핵심 정책안과 주요 장·차관 인선을 놓고 첨예하게 맞설 가능성도 있어 상황을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분석도 많다.
이제 종착지까지 가기 위한 '5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연정 협상의 '제2라운드'가 막 시작됐을 뿐이라는 시각이다.
콘테 총리의 유임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다툰 양당은 현재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현 부총리 및 노동산업장관)가 계속 부총리직을 수행하도록 할 것이냐를 둘러싸고도 양보 없는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이 내각의 핵심 포스트인 재무·내무장관직을 희망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오성운동의 온라인 기반 당원 투표 제도도 난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부패한 기성 정치 타파를 기치로 내걸고 2009년 창당한 오성운동은 당원을 중심으로 한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루소'(Rousseau)라는 이름의 당원 투표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요 정책 수립과 수뇌부 인사 등 핵심 사안에서 전체 당원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오성운동은 민주당과의 연정 협상이 타결된다고 해도 루소를 통한 당원 투표를 거쳐야만 이를 공식 확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절차'라고 반박한다.
특히 마타렐라 대통령이 연정을 승인한 가운데 오성운동 당원들이 투표에서 이를 부결하면 헌법 위반 등 복잡한 법적 이슈가 불거지면서 상황이 꼬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편,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이날 마타렐라 대통령이 오성운동과 민주당 간 연정 계획을 승인하자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잘못된 연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살비니는 오는 10월 19일 동맹을 중심으로 이번 연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면서 지지자들에게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강경한 난민 정책을 주도하며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한 살비니는 오성운동과의 연정을 파국으로 몰아넣고 정국 위기를 부른 장본인이다.
현지 정가에서는 그가 연정을 붕괴시킨 뒤 조기 총선을 통해 동맹을 최대 정당으로 만드는 동시에 자신은 총리직에 오르려는 밑그림을 그렸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오성운동-민주당 연정이라는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를 만나면서 그의 이러한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은 물론 내각에서도 쫓겨날 상황에 놓였다.
자신이 놓은 덫에 빠져 집권당에서 졸지에 야당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오성운동과 민주당 간 연정 협상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대로 새로운 내각이 출범하게 되면 그는 지난 한 달간 이탈리아를 들었다 놓은 정국 위기의 최대 실패자로 기록될 전망이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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