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정치거물로 변신 콘테, 미운오리된 살비니…역전된 정치인생

입력 2019-09-01 19:40  

伊 정치거물로 변신 콘테, 미운오리된 살비니…역전된 정치인생
극우 살비니의 자충수로 불거진 위기 속 정치 입지 극과 극으로
새 연정-살비니 '반비례 함수 관계'…정국위기 당분간 지속 관측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지난 3주간 이탈리아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연립 정부 위기가 오성운동-민주당 간 새 연정 구성으로 정리되는 듯한 분위기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의회 내 '견원지간'으로 대화조차 불가능했던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이 갑자기 손을 잡고 연정을 꾸리는 이변에 가까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극우 정당 동맹이 정권을 잡는 모습을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년 3월 총선 이후 1년 2개월간 함께 내각을 꾸려오며 주요 정책별로 사사건건 부딪치다 결국 '팽'당한 오성운동은 오성운동대로, 이념 성향이 정반대인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동맹에 '원한'을 품고 있다.
반면 오성운동과 민주당 간 연정으로 동맹의 유력한 차기 총리 주자로 거론되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제대로 '되치기'를 당했다.
살비니는 지난 8일 오성운동과의 정책 이견을 극복하기 어렵다며 돌연 연정 붕괴를 선언하고 조기 총선을 요구한 인물이다.
강경 난민 정책 등을 주도하며 지지율이 급상승한 그로선 조기 총선을 통해 동맹을 의회 최대 정당으로 등극시키고 총리직까지 욕심을 낼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오성운동과 민주당 긴 밀착으로 그의 '의회 쿠데타'는 일단 무위로 돌아갔다.
두 당의 연정 협상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대로 새로운 연정이 구성되면 살비니는 내각에서 쫓겨나 다시 야당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독 권력에 대한 욕망을 쫓아 꺼내든 필살의 카드가 되레 그의 정치 인생을 위기로 몰아넣은 셈이다. 정계에서 정치적 '자살골'이자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지 정가에서는 이번 정국 위기의 최대 승자는 총리 유임이 유력해진 주세페 콘테 현 총리이며, 최대 패자는 살비니라는 평가가 회자하고 있다.
작년 6월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에 따라 이탈리아 정치 무대에 등장한 콘테 총리는 그 전까지만 해도 정치 경력이 전무한 무명의 법학자였다.
사실 그의 총리 추대는 오성운동과 동맹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였다.
총리라는 타이틀은 가졌지만, 오성운동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와 살비니 두 실세 부총리 사이의 조율 역할에 국한됐다. 초반에는 '바지 총리'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으로부터 오성운동-민주당 간 새 연정의 총리로 다시 낙점받으며, 정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새 연정이 출범하면 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바탕으로 연정의 조율사 차원을 넘어 실세 총리로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에는 살비니와 디 마이오 등 쟁쟁한 인사들을 제치고 지지율 선두로 올라섰다는 현지 여론 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그렇다면 살비니의 향후 정치적 입지는 어떻게 될까.
일단 현재까지 판세로는 그의 어설픈 연정 붕괴 선언으로 정치적 미래에 먹구름이 낀 게 사실이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이탈리아 제1당 지위를 획득한 뒤 40%에 육박하던 동맹의 지지율은 30% 초반대까지 추락했고, 살비니에 대한 대중적 호감·지지도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가 야권 인사로 내려앉으면 부총리와 내무장관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당시 누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자연스럽게 희미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의 전매특허인 '트위터·페이스북 정치'도 빛을 잃을 수 있다.



정권을 좌파에 넘겨주기 일보 직전인 현실에 크게 당황한 동맹 당원들과 지지자들 사이에선 살비니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마저 새어 나오는 형편이다.
동맹의 최대 지지 기반인 북부 밀라노의 한 시민은 최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살비니가 권력에 지나치게 굶주린 나머지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서 "인기에 취해 마치 총리인 것처럼 위세를 부렸고 스스로 정치적 위기로 걸어 들어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살비니식 정치가 이대로 종말을 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탈리아에서 난민 이슈가 살아있는 한 그의 정치적 입지도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살비니의 인기 이면에는 난민에 대한 이탈리아 국민의 거부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제 구호단체의 난민 구호선 입항을 원천 봉쇄하는 등 반(反)난민 정책에 앞장서면서 잠재된 국민적 분노와 실망감을 달래줬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대체로 그의 정치적 미래가 오성운동-민주당 간 새 연정의 미래와 밀접하게 결부돼 있다는 해석이 많다.
이는 새 연정의 앞날이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도 맥을 같이 한다.
구원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략적 동맹'을 맺은 두 정당의 연정이 1년 이상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연정이 위기에 빠지면 언제든지 살비니의 정치적 입지가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이다. 2023년까지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새 연정이 또다시 붕괴하면 그 수혜자는 살비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오성운동과 민주당은 콘테 총리 유임 문제에 이어 디 마이오의 부총리직 유지 이슈, 내각 배분, 난민 이슈 등을 둘러싸고 연쇄적으로 파열음을 내며 가시밭길 앞날을 예고했다.
살비니도 '네가 죽고 내가 사는' 형태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듯하다.
오성운동-민주당 연정이 국민적 의사에 반한다고 주장해온 살비니는 오는 10월 19일 로마에서 대규모 대중집회를 개최하기로 하는 등 강력한 '반(反) 좌파 포퓰리스트 연정' 투쟁을 예고했다.
새 연정이 '브뤼셀의 승인' 아래 성사됐다고 주장하며 민심 기저에 깔린 '반유럽연합(EU)' 정서도 자극하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현지 정계에서는 향후 이탈리아 정치가 오성운동-민주당 연정과 살비니라는 두 변수의 함수 관계가 역동적으로 작용하며 만성적 위기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lu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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