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후 미군 공습으로 '전쟁의 수렁'…탈레반 반격 성공·세력 확대
트럼프 정부, 탈레반과 직접 협상…전쟁 비용·사상자 등은 큰 부담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2001년 10월 미군 침공 이후 무려 18년간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마침내 종식될 분위기다.
최근 평화협상에서 미국과 아프간 무장반군조직 탈레반이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하면서다.
평화협정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 등을 거쳐 순조롭게 마무리된다면 미국은 135일 이내 약 5천명의 미군을 시작으로 단계적 철수를 시작하게 된다.
아프간이 국제 테러조직의 안식처로 이용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한 탈레반도 기존 아프간 정부와 새 정권 수립 등을 논의하게 된다.
아프간 전쟁은 베트남전을 넘어 미국이 참전한 전쟁 가운데 가장 길게 이어졌다.
아프간은 이에 앞서 이미 19세기부터 영국, 러시아(이후 소련) 등 열강의 침략에 시달려왔다.
이번 협정을 통해 외세 침략으로 얼룩진 아프간 현대사의 한 장(章)이 마무리되고 평화가 정착될 수 있을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하지만 미국은 탈레반과 18년간 싸운 끝에 결국 '적'의 손에 아프간을 맡기고 발을 빼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 열강이 탐낸 지정학적 요충지 아프간
파키스탄, 중국, 이란, 우즈베키스탄 등에 둘러싸인 내륙국 아프간은 지정학적 요충지다.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중동을 잇는 실크로드의 핵심 통로이자 대륙 세력과 해양세력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19세기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이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벌였다.
아프간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3차례에 걸쳐 영국과 전쟁을 치른 끝에 1919년 독립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부족 간 갈등, 쿠데타, 내전이 이어졌고, 1979년에는 소련의 침공을 받았다.
아프간 주민은 미국, 파키스탄, 중국, 이란 등으로부터 무기와 자금 지원을 받아 소련에 저항했다.
결국 소련은 1989년 철수했고 종파와 종족을 아우르며 소련에 저항했던 무슬림 반군조직 무자헤딘이 1992년 친소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했다.
◇ 탈레반과 9·11테러…그리고 미군 공습
이 와중에 1994년 아프간 남부에서 이슬람 이상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건 탈레반이 등장했다. 탈레반은 현지어로 '종교적인 학생', '이슬람의 신학생' 등을 뜻한다.
이슬람 경전을 급진적으로 해석한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군사적 지원 속에 세력을 급속히 확대했다.
그러자 정권을 쥐고 있던 부르하누딘 라바니 대통령은 러시아에 'SOS'를 쳤고 인도와 이란도 지원에 가세했다.
이에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친미 국가들은 탈레반을 지원했고 결국 탈레반은 1996년 라바니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아프간 전 영토의 90% 이상을 완전히 장악했던 탈레반 정권은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지게 된다.
미국은 9·11 테러 후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을 테러 배후로 지목했다. 이어 아프간 탈레반 정권에 빈 라덴을 내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를 거부했고 미국은 2001년 10월부터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탈레반 정권은 미군의 무차별 공습에 버티지 못하고 한 달여 만에 붕괴했다.
◇ '전쟁의 수렁'에 빠진 미국…순탄치 않은 평화 협상
탈레반은 이후 아프간 곳곳에서 정부군 및 나토군을 공격에 나섰다.
탈레반 최고지도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는 도피에 성공했고, 탈레반 대원들은 산악지대에 은신해 연합군을 상대로 게릴라전과 테러를 계속하면서 세력 재건을 시도했다.
대도시나 주요 거점은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이 차지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여전히 탈레반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했다.
그러다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2009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평화협상 구상에 대한 운을 띄웠다.
계속된 전쟁 속에서도 어느 한쪽이 분명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탈레반과 협상을 해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한 이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2009년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도 자신의 임기 내 아프간전을 종료하기를 바랐다.
그는 주둔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는 것을 목표로 2010년 최대 10만명에 이르렀던 주둔군을 줄이고 치안 유지 책임을 아프간 군·경에 이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화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프간 정부는 "정부와 탈레반이 협상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탈레반은 "미국 꼭두각시인 아프간 정부와 머리를 맞댈 수 없다"고 맞서면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미국-탈레반 간 포로-죄수 맞교환, 탈레반의 대외창구 노릇을 하는 카타르 도하 정치사무소 개설(2013년) 등 간간이 성과가 있었지만, 고비 때마다 이견이 불거지면서 협상은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어 2015년 7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내전 14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회담을 열었지만, 곧바로 동력을 상실했다.
탈레반이 벌인 대형 테러와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물라 무하마르 오마르의 사망 등이 겹치면서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15년 10월 자신의 임기 내 아프간 주둔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직접 협상 시작
그러다가 아프간 정부가 2016년 9월 탈레반 다음으로 큰 반군세력인 '헤즈브-에-이슬라미 아프가니스탄'(HIA)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말 탈레반 내부에서도 무차별 테러를 중지하고 정부와의 평화협상에 참여하자는 목소리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와중에 2017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적극적인 아프간 군사전략을 발표했다.
주둔 미군 철수 등에 대한 시한을 제시하는 대신 테러 세력과 싸움에서 승리를 내세웠다.
이후 아프간 주둔 병력은 늘어났지만, 미국에 전황이 유리하면 탈레반과 직접 협상도 가능하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7월 앨리스 웰스 미국 국무부 남·중앙아시아 수석 부차관보가 카타르에서 극비리에 탈레반 측과 만났다.
양측 고위급 대표단이 아프간 정부를 제외한 채 직접 협상 테이블에 나선 것은 2001년 후 사실상 처음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극단적인 테러를 일삼던 탈레반 측 분위기도 과거와 달라졌다. 민간인을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를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프간 정부도 지난해 2월 탈레반에 합법조직으로 인정할 테니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협상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하는 등 화해의 손짓을 했다.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아프간 정부군과 탈레반이 전례 없이 사흘간 휴전하기도 했다.
◇ 9차 협상 끝에 평화협정 합의…18년간 천문학적 비용과 엄청난 사상자 발생
미국과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은 올해 들어 탄력이 붙었다.
지난 1월 양측은 아프간 내 국제 테러조직 불허 등을 조건으로 현지 외국 주둔군을 모두 철수하는 내용의 평화협정 골격에 합의했다.
하지만 종전선언, 철군 조건과 시기, 탈레반-아프간 정부 간 직접 대화 등 세부 사항에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이후 협상은 다시 지지부진해졌다.
미국은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 1만4천명을 3∼5년간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일부를 남기기를 원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1년 이내 외국군 전면 철수·철군 스케줄 공표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다가 지난달 초 8차 협상을 거치면서 급물살을 탔다.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간 평화협상 관련 미국 특사는 지난달 5일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훌륭한 진전을 봤다"며 잠정 합의안에는 조건에 따라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군하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후 양측은 지난달 22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9차 협상에 돌입했고 마침내 역사적인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했다.
할릴자드 특사는 2일 미국이 아프간에서 135일 이내에 약 5천명의 병력을 철수하고 5개의 기지를 폐쇄하는 내용이 포함된 평화협정 초안을 탈레반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대신 탈레반은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은 무장단체가 미국이나 그 동맹에 대한 공격을 모의하는 데 아프간이 이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은 18년간 싸운 탈레반에 아프간을 넘기고 떠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아프간전에 투입한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과 전쟁이 남긴 수많은 사상자도 미국에는 부담이다.
BBC 뉴스는 미국 국방부의 통계를 인용해 미국이 지난 3월까지 아프간 전쟁에 투입한 군사 비용은 7천600억달러(약 924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BBC 뉴스는 전쟁 발발 이후 미군은 2천300여명이 사망했고 약 2만500명이 다쳤다고 덧붙였다.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 통계에 따르면 민간인의 경우 사상자 집계가 체계화된 2009년 이후에만 3만2천명 이상이 숨졌고 6만여명이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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