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앞둔 中 송환법 철회…홍콩시위 진정 여부는 민심에 달려

입력 2019-09-04 21:50   수정 2019-09-04 22:04

건국절 앞둔 中 송환법 철회…홍콩시위 진정 여부는 민심에 달려
급속한 경기 침체·美 등 국제사회 압력도 '송환법 철회'에 영향
조슈아 웡 "너무 부족하고 늦었다"…미수용 4가지 요구가 '불씨'
"이제는 그만 폭력 멈추고 대화해야" 자제 요구 목소리도 커져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4일 전격적으로 송환법 공식 철회를 선언한 것은 홍콩과 중국 안팎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과 무역전쟁 와중에 급속히 침체하는 홍콩 경제에 대한 우려,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앞둔 중국 중앙정부의 부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 등이 송환법 철회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힌다.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홍콩 시위 사태가 송환법 공식 철회라는 전환점을 맞게 된 데는 시위대의 핵심 요구를 일부 수용하지 않고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홍콩 정부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한 소식통은 "람 행정장관은 2주 전 19명의 홍콩 지도층과 만난 후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며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그들이 내놓은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고 전했다.
지난달 24일 캐리 람 장관은 정치인, 전직 고위 관료 등 19명의 홍콩 유력 인사들을 만났는데, 당시 절반이 넘는 참석자들이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송환법 공식 철회 등 시위대의 요구를 일부라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고 홍콩 언론은 전했다.
친중파 진영에서 이러한 요구가 나오게 된 데는 시위 사태로 홍콩 경제가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홍콩 경제에 미친 영향은 우산 혁명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해 금융, 관광, 소매, 부동산 등 모든 부문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달 홍콩을 찾는 관광객 수는 지난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소매업 매출도 급감했다. 관광 경기가 극도의 침체를 보이면서 호텔, 여행업계에서는 감원과 무급휴가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시아의 금융 허브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지난달 홍콩거래소의 기업공개(IPO)가 단 1건에 그쳤고, 최근 홍콩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당초 '2∼3%'에서 '0∼1%'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이러한 암울한 상황이 이어질 경우 홍콩은 물론 중국 경제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홍콩 정부의 정책 결정을 사실상 좌우하는 중국 중앙정부로서는 오는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건국 70주년을 맞아 눈부신 경제성장과 군사력 강화, 미국을 추격하는 초강대국으로의 부상 등을 마음껏 자랑해야 하는 상황에서, 홍콩 시위 사태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이러한 성과를 빛바래게 했다.
무력개입 위협이나 민주인사 대거 검거 등 그동안의 '강공책'이 먹혀들지 않은 상황에서 10월 1일 건국절이 다가오면서, 중국 중앙정부로서는 송환법 공식 철회라는 '유화책'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의 압력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무역, 투자 등에서 홍콩에 중국과 다른 특별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미국이 홍콩 시위 사태를 빌미 삼아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철회할 경우, 가뜩이나 무역전쟁으로 힘에 겨운 중국 경제에 더 큰 짐을 안길 수 있다.
미국과 무역협상을 벌이는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홍콩 시위를 어떻게 해서든 잠재우고 싶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두고 싶다" 홍콩 행정장관 녹취 공개…파문 일자 진화 / 연합뉴스 (Yonhapnews)



다만 이날 발표가 앞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를 사그라뜨릴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일단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해온 범민주 진영의 반응이 회의적이다.
2014년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의 주역으로 대만을 방문 중인 조슈아 웡(黃之鋒)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너무 부족하고 너무 늦었다"며 "캐리 람의 반응은 7명이 희생되고 1천200여 명이 체포된 후에야 나온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최근 몇 주 동안 경찰의 잔혹성은 홍콩 사회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며 '지금 람 장관의 철회 선언을 '진정성 있는' 조치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온라인 포럼 'LIHKG'에서도 이날 발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으며, 캐리 람 장관이 받아들이지 않은 나머지 4대 요구사항을 관철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송환법 반대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이제는 그만 갈등과 충돌을 멈추고 대화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홍콩 시민 웡(52) 씨는 "폭력 사태가 이어지면서 홍콩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며 "시위의 목적 자체가 파괴에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이제 시위대와 경찰 모두 폭력을 멈추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홍콩 법인장인 김 모(50) 씨는 "송환법 반대 시위 초기에는 홍콩인 직원들이 시위를 절대적으로 지지했지만, 지하철 운행 방해와 공항 점거 등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생활에 불편을 느낀 홍콩인들의 지지 열기가 식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송환법 공식 철회 외에 나머지 4개 요구사항을 관철하려는 범민주 진영의 목소리에 시민들이 호응을 보낼지, 아니면 홍콩 경제에 대한 타격을 두려워해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을지에 향후 시위의 향방이 달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풀뿌리 민심이 홍콩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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