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연기법안 찬성 327표·반대 299표…상원 필리버스터가 '고비'
"존슨 조기총선안 상정 재시도…코빈 노동당 대표 10월말까지 허용안해"
(런던·서울=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이광철 기자 = 영국 하원이 보리스 존슨 총리의 '노 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 합의 없는 유럽연합 탈퇴) 강행을 일단 저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보수당에서 쫓겨난 의원들이 가세한 범야권은 존슨 총리의 하원 해산 및 조기 총선 개최 시도도 좌절시켰다.
올 7월 말 취임한 존슨 총리는 3∼4일(이하 현지시간) 이틀 동안 세 차례 하원 표결에서 잇따라 패배하면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영국 하원은 4일 오후 하원 브렉시트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노동당의 힐러리 벤 의원이 제출한 이른바 유럽연합(탈퇴)법안에 대해 표결을 해 찬성 327표, 반대 299표 28표 차로 가결했다.
유럽연합(탈퇴)법안은 영국이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EU에서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한 것이다.
법안은 EU 정상회의 다음 날인 10월 19일까지 정부가 EU와 브렉시트 합의에 도달하거나,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의회 승인을 얻도록 했다.
만약 둘 다 실패하면 존슨 총리가 EU 집행위원회에 브렉시트를 2020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도록 했다.
EU 집행위가 3개월 연기를 받아들이면 존슨 총리는 이를 즉각 수용해야 한다.
법안은 만약 EU가 연기 기간과 관련해 3개월이 아닌 별도 제안을 내놓을 경우에도 하원이 이를 반대하지 않는 한 존슨 총리가 이틀 안에 이를 수용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노 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존슨 총리를 막기 위한 초당적 협력의 결과물이다.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상원에서 다시 논의된다.
법안이 상원에서 수정돼 통과되면 다시 하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후 '여왕 재가'까지 거치면 법률로 효력을 갖게 된다.
영국 하원은 이번 법안 상정 및 표결을 위해 이날 의사 일정 주도권을 하원에 부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전날 통과시켰다.
벤 의원은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면 존슨 총리가 이를 인정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영국에서는 정부가 어떤 법안을 논의할지를 포함해 의사 일정 주도권을 갖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한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기는 했지만, 상원 통과를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BBC와 AP통신 등은 브렉시트 지지파 상원 의원들이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통해 시한까지 법안 처리가 안 되게 하려 한다고 전했다.
존슨 총리 요청으로 다음 달 14일로 여왕연설 일정이 잡히면서 관례에 따라 영국 의회는 다음 주부터 여왕 연설 때까지 정회한다.
앞서 스코틀랜드국민당(SNP)과 자유민주당 소속 의원 75명이 10월 14일로 여왕 연설을 잡으면서 의회 문을 닫은 존슨 총리의 결정이 권한 남용이라며 스코틀랜드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4일 기각됐다.
결국 EU와 합의할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법률이 실질적 효력을 띠려면 이번 주 상원을 거쳐 여왕 재가까지 받아야 하는데 상원의 '시간 끌기'에 막히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BBC는 상원의 브렉시트 지지 의원들이 법안을 막기 위해 100개가 넘는 수정 조항을 내놓고 의사방해(필리버스터)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원은 각각의 수정 조항에 대해 토론을 해야 하는데, 보수당 등 현 존슨 총리 정부를 지지하는 상원의원들이 조를 짜 토론을 진행하면서 의회 휴회까지 시간을 끈다는 전략이다.
존슨 총리는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하원 표결에서 패배의 쓴맛을 봤다.
하원이 법안을 가결한 직후 그는 즉각 하원 해산, 조기 총선 개최를 위한 동의안을 상정하고, 10월 15일 총선 실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는 유럽연합(탈퇴)법이 영국과 EU 간 브렉시트 협상을 좌절시키고 EU를 탈퇴하기로 한 2016년 국민투표 결과를 뒤집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존슨 총리는 자신과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 중 누가 10월 중순 예정된 EU 정상회의에 가서 협상할지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노동당의 코빈 대표는 조기 총선 개최안이 "백설 공주에게 독이 든 사과를 제안하는 사악한 마녀처럼 '노 딜'이라는 독을 건네는 것"이라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코빈 대표는 유럽연합(탈퇴)법이 통과해 '여왕 재가'를 받아 정식 법률이 돼 '노 딜' 위험이 사라지면 총선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어진 표결에서 조기 총선 동의안은 찬성 298표, 반대 56표, 기권 288표로 부결됐다.
영국 '고정임기 의회법'(Fixed-term Parliaments Act 2011)에 따르면 조기 총선이 열리려면 하원 전체 의석(650석)의 3분의 2 이상, 즉 434명의 의원이 존슨 총리가 내놓은 조기 총선 동의안에 찬성해야 한다.
이날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등 주요 야당은 표결에서 대부분 기권했지만, 일부는 찬반 의견을 나타냈다.
존슨 총리는 "코빈 대표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선거 개최를 거부한 첫 번째 야당 대표일 것"이라며, 코빈 대표가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존슨 총리는 앞서 이날 정오께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한 하원 '총리 질의응답'(Prime Minister's Questions·PMQ)에서도 코빈 대표에게 10월 15일 조기 총선 개최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 정치권은 그러나 전날 필립 리 의원이 탈당한 후 자유민주당에 입당한 데다, 보수당이 결의안 표결에서 당론을 어긴 의원 21명을 제명하면서 이날 조기 총선 동의안이 부결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표결권이 있는 의석수가 310석이었던 보수당은 탈당과 제명 등으로 현재는 289석으로 줄었다.
사실상 연립정부를 구성한 민주연합당(DUP·10석)을 고려하더라도 과반(320석)에 턱없이 부족하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보수당 의원들과 개별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브렉시트 교착 국면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해법으로 조기 총선을 제시하고, 오는 9일 조기 총선 개최안 상정을 재시도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코빈 노동당 대표는 당 중진 의원에게 10월 31일까지는 조기 총선을 치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BBC가 전했다.
pdhis9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