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미술관서 '혁명화' 특별전…한국전 당시 미군 포로 그림도
'대장정 초심' 강조 시진핑, '애국 아이콘' 마오쩌둥 적극 활용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지난 6일 찾아간 상하이 황푸강변의 유명 사립 미술관인 룽(龍) 미술관. 특별 전시실에는 '붉은 화풍'의 그림들이 대거 걸려 있었다.
이 미술관은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앞두고 근·현대사를 조명한 '혁명화'를 모아 대형 특별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대장정(大長征) 시기부터 시작해 국공 내전과 항일 전쟁, 1949년 신중국 수립 이후 현대 시기를 아우르는 그림의 중심에는 중국의 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국가주석의 모습이 있었다.
마오쩌둥은 장정을 이끈 영웅적 지도자이자 밤낮없이 정사를 돌본 헌신적 지도자, 들판과 공장에서 농민·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보살핀 자애로운 지도자로 그려졌다.
왼팔에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이 감격에 찬 표정으로 마오쩌둥의 전화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것처럼 중국 현대사에 큰 상흔으로 남은 문화대혁명조차도 낭만적 시기로 묘사돼 있었다.
중국이 미국과 전면적 갈등을 벌이는 와중에 중국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르는 한국전쟁 당시의 그림을 묘사한 그림도 눈에 들어왔다.
한 유화 그림은 중국군에게 포로로 붙잡힌 미군 101공수사단 소속 장병들이 수척한 얼굴로 밥그릇을 든 채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모습을 담았다.
또 최근 부쩍 강해진 북중 수교 70주년 경축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피로 맺은 북중 친선'을 주제로 한 그림도 있었다. 이 유화 작품은 한국전쟁 시기 중국군과 북한군이 서로에게 달려가 얼싸안으며 반갑게 합류하는 장면을 그렸다.
내달 1일 중국 건국 70주년을 앞두고 중국에서 경축 분위기가 부쩍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부'인 마오쩌둥 기념 열기도 뜨겁다.
중국이 무역 분야에서부터 시작해 외교·안보·기술·인권 등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미국과 사실상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마오쩌둥이 '애국'의 아이콘으로 소환되고 있다.
홍콩처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기반으로 한 특별행정구인 마카오에서도 지난 1일부터 마카오 정부와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성 정부 공동 주최로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나셨다'는 주제로 특별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주민들에게 (마오쩌둥의) 위대한 업적을 보임으로써 애국 열정을 고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이스안(崔世安) 마카오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의 발언은 이번 행사의 목적이 '애국심 고양'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도서 분야에서도 마오쩌둥 열기가 뜨겁다.
중국 최대 인터넷 서점인 당당(當當)의 지난달 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1위는 32권짜리 '마오쩌둥 전집'이다. 2위는 시 주석의 청년기를 다룬 '시진핑의 7년간의 지식 청년 세월'이었다. 오늘날 중국의 번영을 가져온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책은 4위로 밀려나 있었다.
중국이 전면적 미중 갈등이라는 심각한 대외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마오쩌둥이 단순히 애국과 국난 극복의 상징으로 소환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마오쩌둥 이후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위상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실제로 마오쩌둥의 정치적 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대미 항전'에 나서는 모습이다.
시 주석은 덩샤오핑이 구축한 집단지도체제를 사실상 와해시키고 자신이 권력의 정점이 되는 1인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기 시대의 통치 이념을 '이론', '론', '관' 등으로 낮춰 불러 마오쩌둥의 '사상'과 차별화한 덩샤오핑 이래의 최고 지도자들과 달리 시 주석은 자기 통치 이념을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으로 명명했다. 이는 중국에서 시 주석의 남다른 정치적 위상을 상징한 사건이다.
작년부터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하고 나서 시 주석은 자신의 통치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시 주석은 최근 '두 개 수호'(兩個維護·양개유호)란 정치적 구호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나온 이 구호는 당의 중심인 시 주석을 절대적으로 지키고, 당 중앙의 영도에 절대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양개'로 시작하는 이 구호에서 마오쩌둥 사망 직후 후계자였던 화궈펑(華國鋒)이 '마오쩌둥이 생전에 내린 결정은 모두 옳다'며 내세웠던 교조적 정치 구호인 '양개범시'(兩個凡是)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울러 중국이 최근 들어 미국과 강경 대치하면서 노골적으로 장기전 태세를 굳혀가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시 주석이 마오쩌둥의 지구전론(持久戰論)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5월 거의 무역 협상 타결 직전 단계까지 나아갔다. 미국 측은 중국이 돌연 '굴욕적 양보'를 할 수 없다면서 강경 태세로 전환하는 바람에 협상 판이 어그러졌다고 주장했다.
지구전론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마오쩌둥이 발표한 전략이다. 마오쩌둥은 당시 널리 퍼진 '중국필망론'(中國必亡論)과 '중국속승론'(中國速勝論)에 모두 현실성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군사력과 경제력이 월등한 일본에 맞서 유격전을 바탕으로 한 장기전으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관영 후난일보는 "이 시점에서 마오쩌둥의 '지구전론'을 다시 읽는 것은 시진핑 총서기의 국제·국내 정세에 관한 중요 판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 장기화 국면 속에서 지구전론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인민출판사가 작년 12월 펴낸 '지구전론을 다시 읽는다' 책은 처음엔 1만부만 찍었지만 금세 절판되면서 8만부를 더 찍어내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은 올해 들어 '초심을 잃지 않고 사명을 기억한다'(不忘初心牢記使命)는 이름으로 험난했던 중국공산당 초기 역사를 돌아보는 대대적인 정치·교육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미국과의 전면적 충돌로 인해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대장정 시기를 비롯한 중국공산당이 초기 겪었던 고난의 역사에는 비견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국민들에게 고통 감수를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 주석의 여러 대외 행보는 노골적으로 '제2의 대장정'을 선언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장시성에 있는 홍군의 대장정의 출발지를 방문해 대미 항전 전의를 다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서 복귀하자마자 '새로운 대장정(大長征)의 길을 걸어 나가자'고 선언했다.
또 최근 시 주석은 만리장성 서쪽 끝 관문을 찾았다. '중화민족'에게 만리장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는 상징적인 보루다. 시 주석이 발신하고자 하는 대내외 메시지는 선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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