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살인죄 복역후 러시아서 가짜 이름의 진짜 여권 받아"
"러시아 적대 세력 해외암살 재개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미국 관리들이 최근 독일에서 발생한 전 체첸 반군 지도자 살해사건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이는 러시아가 적으로 간주한 대상을 표적으로 한 해외 암살 작전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앞서 지난달 23일 베를린 시내 한 공원에서는 인근 이슬람 사원으로 가던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국적의 40세 남성이 총격을 받아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남성은 과거 체첸 무장봉기 당시 러시아에 저항한 반군 지도자 젤림칸 칸고슈빌리로 밝혀졌다.
독일 경찰은 권총과 소음기를 버린 뒤 전동 스쿠터를 타고 현장을 떠나려던 러시아 국적의 남성 1명을 체포했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일련의 살인 및 공격 가운데 가장 최근에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에서는 전직 러시아 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이 벌어졌다. 신경안정제 노비초크가 동원된 당시 사건을 계기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 외교관 100여명을 추방한 바 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러시아군 정보기관인 정찰총국(GRU)을 배후로 지목했다.
이번에 독일에서 발생한 전직 체첸 반군 대원 살인 사건은 독일, 폴란드, 프랑스 당국 등이 조사 중이다.
이와 관련, 한 미국 관리는 "미국은 이번 암살에 러시아가 책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WSJ은 미국 관리가 이번 사건과 러시아의 연관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 관리에 따르면 용의자는 러시아 감옥에서 살인죄로 복역한 뒤 출소했으며, 풀려나자마자 '바딤 소콜로프'라는 이름의 진짜 여권을 받았다.
미국 관리들은 다른 이름의 여권이 신분 위장용이라고 믿고 있는데, 어쨌든 용의자는 이 여권을 이용해 모스크바의 프랑스 대사관에서 유럽 체류가 가능한 특별 비자를 받았다는 게 이 관리의 설명이다.
이 관리는 "가짜 이름을 새긴 진짜 여권은 러시아 당국만 제공할 수 있다"며 러시아 당국의 조직적 범죄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용의자는 파리를 통해 EU에 입국했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로 건너가 며칠을 머문뒤, 범죄 현장인 독일 베를린으로 갔다고 미국 관리는 설명했다.
또 베를린 방문 때도 바르샤바의 호텔에 짐을 남겨둔 상태여서, 다시 돌아올 계획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폴란드 관리는 부연했다.
수사 당국자들에 따르면 용의자는 베를린의 공범에게서 암살 대상의 일상과 동선 등을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관리들도 이번 사건이 조직적인 범죄일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그러나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번 사건의 배후와 체포된 용의자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런 독일 측의 애매한 반응에 대해 야당 등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06년부터 적대 세력 해외 암살을 공식화했고 이후 중동, 터키,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암살이 자행됐지만, 러시아 측은 해외 암살 연루 자체를 강경하게 부인해왔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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