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 머드 지역 큰 피해…빈민 노동력 의존했던 부촌도 보수공사 못해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 카리브해 섬나라 바하마를 휩쓴 허리케인 도리안이 극심한 빈부격차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2일(현지시간) 전했다.
도리안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그레이트 아바코 섬 매시 하버의 머드 지역은 저지대에 있는 데다 주기적으로 화재 때문에 잿더미가 되는 곳이다. 폐자재로 허술하게 지은 집들이 밀집한 판자촌이다.
바하마 정부가 '규제받지 않는 커뮤니티'라고 부르는 비공식 정착 지역인 머드의 거주자들이 부촌인 베이커스 베이에서 요리, 청소, 건설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머드 주민 2천여명은 매일 페리를 타고 베이커스 베이로 출퇴근한다.
WP는 베이커스 베이에 고급 주택을 가진 유명 인사들이 과거에는 머드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할 수 있었으나, 도리안으로 많은 머드 주민이 숨지거나 이재민이 되면서 고급 주택을 고칠 노동자가 없는 의존적 경제구조가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달 초 도리안이 최고 등급인 5등급으로 발달하면서 그레이트 아바코 섬을 덮쳤을 때 미국과 유럽에 집을 가진 베이커스 베이의 부호들은 일찌감치 안전한 곳으로 대비한 뒤, 노동자들을 시켜 셔터를 설치하는 등 허리케인에 대비했다.
반면 머드 주민들은 대피하는 대신 집과 살림살이를 챙겨야 한다며 그대로 머무르기를 원했다. 이곳에 살지만 정식 이주 서류가 없는 아이티인들은 교회로 대피했다. 이들은 섬을 떠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도리안이 상륙했을 때 이 지역은 몇 시간 만에 쑥대밭이 됐고 주택도 모두 파괴됐다. 허리케인 희생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튼튼하게 지어진 베이커스 베이의 대주택들은 지붕이 부서지고 야자나무가 쓰러지는 정도의 피해를 봤다.
베이커스 베이에서 멀지 않은 그레이트 구아나 케이에 집을 갖고 있으면서 하룻밤에 1천 달러를 받고 빌려주는 임대업을 하는 메리 보일은 "카스트 제도가 있는 인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국 오하이오 출신인 그는 "한쪽에는 집을 소유한 미국, 캐나다, 유럽 백인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지역 주민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바코 비치 리조트의 항만소장인 글렌 켈리는 "이곳에 체류하는 아이티 노동자들에게 늘 보수공사를 의존했는데 언제 그들이 다시 올 수 있을지가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 리조트에서 요리와 설거지를 담당했던 노동자 2명은 머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베이커스 베이의 리조트와 골프 클럽들은 구호 기금을 모으고 있지만, WP는 리조트·대주택 소유주들조차 이런 인도주의적 활동이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필요한 자신들의 현실적 요구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머드 지역은 정부로부터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허리케인 도리안이 물러간 뒤에도 복구 사업은 민간 개발업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 디스커버리 랜드의 경영자인 마이크 멜드맨은 "우리는 (머드) 주민들이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들은 일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임시주택이라도 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리안의 습격 이후 바하마에선 지금까지 50명이 사망했고 실종자도 1천300명에 달한다. 온라인상에서는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허버트 잉그레이엄 전 바하마 총리는 현지매체 나소가디언에 "내가 가진 정보로는 수백 명이 죽었다. 아바코에서만 수백 명이 사망했고 그랜드바하마에서도 상당한 사망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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