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분장' 과거 파티 사진 잇단 공개로 곤혹…연일 사과 진땀
(밴쿠버=연합뉴스) 조재용 통신원=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캐나다 총선이 돌발 이슈로 출렁이고 있다.
집권 자유당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20대 때 흑인 분장을 한 채 파티를 즐기는 사진이 잇따라 공개돼 인종주의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문제의 사진은 지난 18일 시사주간지 타임에 처음 공개된 이후 다른 곳에서 찍힌 사진이 또 나타나 트뤼도 총리는 해명과 사과, 용서를 구하는 회견을 하느라 연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평소 그는 다문화주의와 다양성에 대한 포용, 유색 인종 등 소수자의 지위를 앞장서 대변·옹호하는 이미지로 인기를 누렸으나 그 이면, 성품 내면에 정반대의 인종 차별주의를 숨겨왔다는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타임지에 공개된 사진에서 그는 얼굴과 목, 손 등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 '아라비안 나이트'의 알라딘으로 분장을 하고 파티에 참석, 웃고 있다.
또 다른 사진에서도 자메이카 흑인으로 분장한 채 익살을 떠는 몸짓을 연출하고 있다.
북미 사회에서는 백인이 검정이나 갈색으로 얼굴 등을 분장하는 것은 흑인 등을 희화화하는 인종차별적 모욕 행위로 비판받아 왔다.
지금까지 드러난 영상은 사진 2장과 비디오물 1건 등 모두 3건으로, 지난 2001년 밴쿠버 사립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29세 때와 1990년대 초로 추정되는 20대 초반 때 촬영됐다.
사달이 벌어지자 그는 즉각 시인-해명-사과-참회를 이어갔으나 앞과 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구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진짜 트뤼도'는 어느 쪽인가라는 의심이다.
수차례 기자회견에서 쏟아진 질문들이 모두 그의 '정체'를 추궁하는 내용이었던 것이 그에 대한 충격과 실망을 보여주었다.
당장 "흑인 분장을 했던 다른 사례가 얼마나 더 있는가"라는 물음에서부터 "흑인 분장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언제 처음 깨달았나", 또는 "흑인 분장이 인종 차별적 행동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은 언제인가"라는 등 인종주의에 대한 태도를 탐지하려는 질문이 잇따랐다.
심지어 "총선을 이끌 자격이 있느냐. 다른 지도자에 양보하고 사퇴할 생각은 없는가"라는 가혹한 질타가 나오기도 했고, 한 미국 기자는 "당신의 행위가 다양성과 포용주의로 상징되는 캐나다의 국가 명성을 해치지 않았는가"라고 공격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트뤼도 총리는 줄곧 "잘못된 일이다", "용서를 빈다", "상처를 입었을 사람들로 마음이 아프다"는 등 사과를 반복했지만 때로 말을 더듬거나 한순간 눈시울을 붉히는 등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작 공개되지 않은 다른 '전과' 사례에 대해서는 "특정하기가 조심스럽다"고 얼버무렸다.
정치권과 언론은 이 대목을 주목하며 "과거 흑인 분장 행위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특히 "당시에는 그 행위가 잘못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는 그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냉소적인 반응이 주조를 이룬다.
무엇보다 알라딘 분장을 했던 나이가 29세라는 점에서 해명의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당시 직업이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점, 인종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분명할 수밖에 없는 2000년대라는 시기 등도 애당초 그의 내면에 인종주의적 성품을 품고 있었다는 의심을 부른다.
더구나 그가 살며 가르치던 밴쿠버가 캐나다에서도 가장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민족·다문화 도시라는 점에서 인종 문제에 무감각했다는 해명이 힘을 얻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끊이지 않는 논란의 핵심은 '그는 누구인가'라는 것이다.
한 정계 인사는 "2019년의 트뤼도와 2001년의 트뤼도 중 누가 진짜 트뤼도인가"라고 물었다.
트뤼도 총리에 이번 선거는 재선을 통해 정계 거물로 자리를 굳히기 위한 중대 승부의 분수령이다.
그는 지난 2008년 초선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진보와 관용의 상징으로 성장을 거듭, 순탄한 길을 달려왔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자칫 예전의 대중적 호감과 이미지에 먹칠을 당할 위기를 겪고 있다.
캐나다 진보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누리던 그가 뜻밖에 닥친 '위선'이라는 악재를 넘을지 관심이다.
이날 현재 여론조사기관인 나노스 연구소의 일일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트뤼도 총리의 자유당 지지도는 34.2%로 보수당의 37.4%에 뒤진 채 백중세의 추격을 벌이고 있다.
조사 관계자는 이번 논란으로 자유당의 지지도가 손상된 흔적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jaey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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