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위기 넘긴 이스라엘 네타냐후…강경한 중동정책 이어지나

입력 2019-09-26 02:35  

벼랑끝 위기 넘긴 이스라엘 네타냐후…강경한 중동정책 이어지나
재임기간 13년 넘는 최장수 총리…비리혐의로 검찰기소 앞두고 연임 기회
총선 앞두고 요르단강 서안 합병 주장 등 강경 행보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정치 인생의 최대 고비를 맞았던 이스라엘의 강경파 지도자 베냐민 네타냐후(69) 총리가 한숨을 돌리게 됐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네타냐후 총리를 차기 총리 후보로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네타냐후 총리가 앞으로 42일 안에 연립정부를 구성하면 연임에 성공하고 5선 고지에 오르게 된다.
당초 지난 17일 총선이 치러진 뒤 네타냐후 총리의 연임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이 중도정당 청백당(Blue and White party)에 제1당 자리를 빼앗길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또 네타냐후의 과거 동지였던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전 국방부 장관이 총선 전부터 중립을 선언하면서 우파 진영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네타냐후 총리는 뇌물수수와 배임 및 사기 등 비리 혐의로 다음 달 검찰에 기소될 위기에 놓였다.
네타냐후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아논 밀천 등으로부터 수년간 샴페인과 시가 등 26만4천달러 상당(약 3억원)의 선물을 받고 한 일간지와 막후거래를 통해 우호적인 기사를 대가로 경쟁지 발행 부수를 줄이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는 총선 이틀 후인 지난 19일 베니 간츠 청백당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
네타냐후가 총리 후보로 지명된 것은 우파 진영의 의석이 중도좌파 진영보다 우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총선 개표 결과, 유대주의 종교정당을 포함한 우파 진영은 55석으로 중도좌파 진영(54석)보다 1석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랍계 4개 정당 연합인 '조인트리스트'는 총리 후보로 간츠 대표를 지지했지만, 조인트리스트에 함께 해온 발라드당은 간츠 대표의 이념이 네타냐후 총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며 반기를 들었다.
이에 따라 간츠를 총리 후보로 추천한 아랍계 정당들의 의석이 13석에서 10석으로 줄면서 네타냐후 총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의 기회를 잡았지만,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그가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 리블린 대통령이 간츠 대표에게 연정구성권을 줄 수 있다.
캐스팅보트를 쥔 리에베르만의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이 계속 네타냐후 총리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연정 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리에베르만은 총선 직후 리쿠드당과 청백당이 구성하는 연정에만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 검찰의 기소 여부에 따라 네타냐후 총리의 도덕성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네타냐후는 올해 4월 총선에서 우파 정당들의 선전으로 총리 후보로 지명됐지만,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당시 리에베르만 전 장관이 초정통파 유대교 신자들에게도 병역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며 연정 합류를 거부했다.
네타냐후는 유대교 정당들을 의식해 리에베르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 카드를 선택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연임에 성공하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를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분쟁을 비롯한 중동정책에서 강경한 노선을 이어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네타냐후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안보 이슈를 부각하며 우파 지지층들의 집결을 시도했다.
지난 9일 이란이 중부 아바데에서 핵무기 개발 시설을 새로 만들었다가 이스라엘에 발각되자 올해 7월 관련 시설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총선을 하루 앞둔 16일에는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요르단강 서안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강제로 점령한 지역이며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이곳에서 정착촌을 늘려왔다.
네타냐후 총리가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합병을 실제로 추진할 경우 아랍권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발 등으로 중동의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우려된다.

끈질긴 정치적 생명력을 보여준 네타냐후는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 정치인이다.
달변의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비비'(Bibi)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재임 기간이 모두 13년 6개월로 이스라엘 역대 총리 중 가장 길다.
그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총리를 지냈고, 2009년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른 뒤 계속 집권하고 있다.
1949년 이스라엘의 지중해 도시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네타냐후는 사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매사추세츠 공대(MIT)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했다.
1988년 초선 의원이 된 뒤 1993년 보수 리쿠드당 당수에 올랐고 1996년 선거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몬 페레스 노동당 대표를 누르고 불과 만 46세로 총리에 당선됐다.
그는 1999년 총선에서 패배 후 정계를 떠났다가 2003년부터 2년간 아리엘 샤론 총리의 연립정부에서 재무장관으로 일했고 2005년 12월 다시 리쿠드당 대표에 올랐다.
네타냐후 총리는 2009년 총선에서 리쿠드당이 집권당 카디마당에 1석 차이로 패해 2위에 그쳤지만, 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아 10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고 2013년과 2015년 총선에서 잇달아 승리했다.
noj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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