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돼지 흑사병'으로 불릴 정도로 치명적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경기 북부와 인천 지역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의 농장에서 27일 돼지열병이 확진됨에 따라 국내에서 발생한 이 가축 질병은 9건으로 늘었다. 최초 발병일로부터 11일 만이다. 특히 강화군은 지난 나흘간 매일 한 건씩 확진 판정이 이어지고 있다. 발생 시점이 엇비슷해서 바이러스가 일정 기간 대량 유입되어 강화군 전체로 번진 것 아니냐는 추정을 낳게 한다. 돼지 농가들이 비교적 좁은 곳에 몰려 있어 빠른 확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돼지열병 감염경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방역 당국은 언제, 어떻게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입돼서 어떤 매개체와 경로로 퍼지게 된 것인지 아직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국은 돼지열병 발생 농장의 위치 등을 고려해 북한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발병 농장이 비무장지대(DMZ)를 따라 띠를 두르 듯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병 농장은 북한과 이어진 강이나 하천에서 가깝다는 지리적 공통점이 있다. 멧돼지 등 여러 야생동물이 쉽게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수심도 얕다. 최근 태풍이 북한 황해도 지역에 상륙하면서 접경지역에 많은 비가 내려 멧돼지나 멧돼지의 분변 등이 떠내려와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증거가 없어 혼란만 가중하고 있다.
확산경로 역시 마찬가지다. 방역 당국은 1~4차 돼지열병이 발생한 곳은 발병농장을 오간 차량과 사람을 통해 전염됐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5·6차 농장은 역학관계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7차 발생농장인 강화군 석모도 농장은 당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강화도 본섬과 다리 하나로 연결된 석모도의 이곳 농장은 다른 발병 농장과 12㎞ 이상 떨어져 있고, 폐업상태여서 남아있는 돼지는 2마리밖에 없었다. 예방적 차원에서 혈청을 채취해 검사하다 감염이 확인됐다. 잔반 급식도 하지 않았고, 차량으로 바이러스를 옮겼을 가능성도 적어 감염경로가 안갯속이다. 돼지열병 확산 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정부는 결국 길목을 지키지 못하고 전국에 내려진 이동중지명령을 28일 정오까지 48시간 연장해야만 했다. 이동중지명령이 풀리더라도 경기 북부와 인천, 강화 등지의 차량 이동은 계속해서 제한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2차 중점관리지역(경기·인천·강원 전역) 밖으로 방역망이 뚫리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돼지열병이 이곳을 벗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최초 바이러스 유입과 확산 경로, 감염 매개체 등을 파악해 효율적인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 국방부 등 관계부처 간 협력체제도 재점검해야 한다. 전국으로 돼지열병이 확산하는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의 사회재난 대응 기구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동도 염두에 둬야 한다. 바이러스 유입이 의심되는 북한도 지속해서 설득해 공동방제에 나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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